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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진공목(陈公木) 최규복(崔圭福)

김정함 길림신문 2022-08-08 11:24:26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3. 시, 지구급 중공 지도간부

진공목(陈公木, 1900—1935): 중공만주성위원회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위원

원명은 김상선(金相善)이고 리병희(李炳熙)라고도 불렀다. 조선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여났으며 3.1운동에 참가하여 조선 진주감옥에서 1년간 복역하였다. 1920년 6월, 출옥 후 1923년 3월 북평고등사범학원에 입학하였으나 1924년 3월에 퇴학하였다.

1925년 8월, 상해 혜령영어전문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1년 4개월 간 공부하다가 후에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 6월, 무한중앙군사정치학교 제6기생으로 졸업하고 7월 말에 남창봉기에 참가했다. 1928년 3월,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 3월, 중공중앙의 파견을 받아 동북지역에 갔으며 그곳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4월에 중공만주성위원회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였고 북만에서 위성(威声)과 함께 〈북만 14개 현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중공만주성위원회에 제출했다.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기간에 또 중공만주성위원회에 〈소수민족사업위원회의 사업에 대한 의견 요강〉을 보고서로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 후 중공동만특위로 파견되여 연변으로 갔다. 1930년 8월, 안도현 대전자에서 중공림시당지부를 세우고 당지의 농민들을 지도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대전자공안국을 습격하여 보총 13자루와 탄알 수백발을 로획한 후 이를 토대로 로농무장봉기대를 조직하였다.

‘길돈폭동’후 반석 일대에 가 리동광 등 조선족 공산당원들과 함께 조선족 인민대중들에게 맑스-레닌주의와 로씨야 10월혁명을 소개하였으며 그들을 농민동맹, 청년동맹, 부녀동맹 등 대중조직에 가입시키고 반제반봉건 투쟁을 벌렸다.

1931년 초에 안도 대사하로 다시 파견받아 3월에 중공안도현위원회를 설립하고 서기가 되였으나 얼마 못 가 현위원회가 파괴당하였으며 중공연화현위원회로 옮겨 서기로 임명되였다. 같은 해 4월 8일 일제에게 체포되여 감옥에서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최규복(崔圭福, ?—?):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조직부 부장

1933년에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조직부 부장을 지냈다. 당해 10월, 합립강에서 현당위원회 간부회의 도중 변절자의 밀고로 위만군 헌병대에 현위서기 등 12명 공산당원, 공청단원과 함께 체포되여 혹형을 당하다가 14일에 비밀리에 생매장당하였다.

(자료출처: ≪송산의 풍설정≫)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인물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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