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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상화 김서현

김정함 길림신문 2022-11-27 13:17:49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상화(金相和, 1900—1931): 중공왕청현위원회 서기

원명은 김재봉(金在凤)이고 1900년 2월 연길현 광개향 후동(厚洞)촌에서 태여나 1924년 가을 왕청현 하마탕으로 이주했다. 1927년에 조선공산당 엠엘파에 가입하였으며 1928년 여름 하마탕에서 청년회, 소선대, 호조회 등 대중혁명단체를 조직했다.

1930년, 동만 5.30봉기 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9월에 중공하마탕구위원회 서기로 되였다. 1931년 1월, 중공왕청현위 서기 김훈이 체포되자 그 뒤를 이어 중공왕청현위원회 제2임 서기로 되였다.

그가 현위서기가 되기 전인 1930년 겨울 동북군 돈화현 제7퇀 퇀장인 왕수당이 ‘한(韩)민족련합회’ 반동 무장과 야합하여 동만 각지에 대한 야만적인 ‘토벌’을 감행하였다.

1931년 1월, 적들의 ‘토벌’에 맞서기 위하여 유격대 활동을 강화할 문제를 토의하던 중 ‘토벌대’에 체포되여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2월 5일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김서현(金瑞铉, 1899—1935): 중공목릉현위원회 서기

1899년에 조선 함경북도 길천군에서 태여나 쏘련으로 이주했다가 1912년에 흑룡강성 목릉현 팔면통 향양촌으로 이주했다.

1929년 가을 혁명활동에 참가하여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같은 해 10월, 중공목릉현위원회가 설립되자 서기로 되였고 1931년 11월 목릉현당위원회가 목릉구당위원회로 개편되자 조직위원으로 되였다.

1932년 11월, 구당위원회가 다시 현당위원회로 개편되자 조직부 부장으로 되였다. 1933년 7월, 밀산현 합달에 가 밀산유격대를 결성하는 준비사업을 하였다. 1934년 11월, 유격대를 따라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 제2퇀에 소속되였다. 1935년 9월, 흑룡강성 벌리현 통천구(通天沟)에서 반역자에 의해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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