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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한식 김혁두 김형철 김훈

김정함 길림신문 2023-01-16 14:28:39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한식(金汉植, ?—1932): 중공목릉현위원회 위원, 목릉현 항일유격대 대장

1932년에 중공목릉현위원회 위원 겸 목릉중고(中高)련합 반일총회 조직부 부장을 지냈으며 당해 11월에 중공목릉현위원회에서 30여명으로 구성된 목릉현항일유격대를 결성하자 대장이 되였다. 당해말에 있은 한차례 무기탈취 전투에서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목릉현지≫)

김혁두(金革头, ?—?): 중공녕안현위원회 서기

1930년 6월부터 9월까지 중공녕안현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김형철(金亨哲, ?—?): 중공북만특별위원회 할빈시위원회 농민운동(부) 책임자

1930년 8월, 중공북만특별위원회 할빈시위원회 농민운동(부) 책임자로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김훈(金勋, 1904—1934): 중공왕청현위원회 서기

1904년 6월, 길림성 연길현 명동촌(오늘의 룡정시 지신진 명동촌)에서 태여나 의란구에서 소학교 공부를 마치고 룡정 대성중학교와 영신중학교를 다녔다.

1925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쏘련홍군 대위로 있는 외숙부를 찾아 울라지보스또크로 가 그곳의 원동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1927년에 왕청현으로 돌아와 배초구향정부의 문서로 있으면서 그 일대의 청년회, 부녀회, 소년회 등 혁명단체를 조직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1930년 5월, 대황구에서 왕청현의 천교령, 묘령, 하마탕, 유팡동 일대의 혁명적 대중들을 묶어세워 로농유격대를 조직하고 대장이 되였다. 그해 6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0월에 중공왕청현위원회 제1임 서기로 되였다. 그해 라자구적색유격대 즉 왕청현유격대를 결성하고 정치위원이 되였다.

1931년 1월, 대흥구, 묘령, 천교령 등지에서 적들의 ‘토벌’로 하여 파괴된 당조직과 혁명단체를 재건하는 간고한 사업을 벌리다가 삼차구(三岔口)에서 ‘토벌대’에 체포되여 연길감옥으로 압송되였다.

옥중에서 중공연길감옥위원회를 조직하고 서기를 맡아 탈옥을 계획했으나 변절자의 밀고로 실패했다. 옥중투쟁을 벌리던 중 1934년 12월 16일 놈들에게 비밀리에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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