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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남재수 등운산 라일 량의봉 량환준

김정함 길림신문 2023-02-13 14:06:25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남재수(南在殊, ?—?): 중공화전현위원회 서기

1930년 10월, 중공화전(桦甸)현위원회가 설립되자 서기로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화전력사≫)

등운산(邓云山, ?—?):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위원

1933년 10월부터 1934년 10월까지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라일(罗一, 1903—1932): 중공동만특별위원회 교통부 책임자, 비서처 처장

길림성 연길현 와룡동에서 태여나 ‘15만원 사건’으로 조선 청진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3년후 석방되여 동만에 돌아와 계속 혁명활동에 참가하였다.

1931년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 교통부 책임자, 비서처 처장이 되였다. 11월에 연길현 조양천에서 체포되여 룡정일본총령사관에 40여일간 갇혔다가 석방되였다. 그 후 조양천에 돌아와 계속 지하혁명활동을 하였다.

1932년 7월, 일본헌병대의 ‘토벌’에 걸려 재차 체포되였고 당일 조양천헌병대에 의해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량의봉(梁仪凤, ?—?): 중공요하중심현위원회 위원

1936년 1월, 중공요하중심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량환준(梁焕俊, ?—?): 중공아성현위원회 선전부 부장

길림성 화룡현 명암촌 출신으로 룡정동흥중학교 재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고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1929년 2월, 길림에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화요파) 남만도 선전부 부장이 되였다.

1930년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6월에 약수동쏘베트정부 설립 당시 ‘좌’경방침을 비판하다가 당직 정지 및 로동개조 처분을 받았다. 11월에 중공아성현위원회 선전부 부장이 되였다. 1931년 봄, 할빈 중동선 호로군사령부감옥에 구류되였다가 출옥 후 공산주의운동 일선에서 물러나있었다.

1945년 8월, 길림조선인해방동맹을 결성했다. 9월에 중국공산당에 재가입하여 10월에 중공길림특별지부 조선인지부를 조직하고 서기가 되였다. 11월에 화전군정학교 부교장이 되였고 1946년 3월 길림성민주련맹이 조직되자 당조직 서기가 되였다.

1949년 이후, 연변교육출판사 사장을 지내다가 1957년에 편집원으로 좌천되였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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