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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리제순 리창혁 리철석 리충일

김정함 길림신문 2023-04-03 14:56:14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리제순(李悌淳, 1908—1945): 중공장백현위원회 부서기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으로 1934년 3월 길림성 장백현 상강구 이십도구 신흥촌으로 이주하였다. 촌장으로 있으면서 혁명활동을 하다가 1936년 9월 동북항일련군에 입대하였다. 1937년에 조국광복회 장백현사업위원회 책임자로 있었고 중공장백현위원회 부서기로 있었다.

1937년 6월, 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했으며 10월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투옥되였다. 1941년 8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45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리창혁(李昌赫, 1902—?): 중공훈춘현위원회 조직부 부장

리영일(李永日, 李永一)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함경북도 명천 출신이다. 1928년에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엠엘파)에 가입했으며 당해 8월 동만도 룡정청년동맹 상무위원이 되였다.

1930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5월에 동만 5.30봉기 당시 룡정일대의 봉기 준비에 참여했다. 중공연변당부 출판부원, 중공훈춘현위원회 조직부 부장 등으로 있었다.

1931년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1933년 12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리철석(李哲石, ?—?): 중공목릉현위원회 서기

1932년 11월, 중공목릉현위원회에서 30여명으로 구성된 목릉현항일유격대를 결성하자 정치지도원이 되였다. 당시 목릉현당위원회 서기를 겸하고 있었다.

(자료출처: ≪목릉현지≫)

리충일(李忠一, ? — ?): 중공화천현위원회 서기

1934년 3월,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의 파견으로 안방하(安邦河)구당위원회를 재건하고 서기가 되였다. 1936년 9월 18일, 안방하구당위원회가 하강특별위원회에 소속되면서 구당위원회 위원으로 지내다가 1937년 3월 중공화천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자료출처: <우의(友誼)지구 당조직 발전 활동 상황>, ≪중국공산당흑룡강성조직사자료≫)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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