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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최우진 최창복 최충호 최홍기

김정함 길림신문 2023-06-15 09:52:57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최우진(崔宇振, ?—?): 중공료하중심현위원회 위원

1936년 1월, 중공료하중심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최창복(崔昌福, 1898—1935): 중공훈춘현위원회 서기

별명이 최늙은이(崔老头)이고 풍옥상(冯玉祥)이라고도 했다. 길림성 훈춘현 류정평 출신으로 1928년 5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8월에 훈춘구당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2년 12월, 중공연길현당위원회 조직부 부장, 중공연길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3년 12월, 중공훈춘현위원회 서기가 되였고 1934년 10월 훈춘현위 조직부 부장으로 되였다. 1935년 2월,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여 왕청 금창에서 처형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최충호(崔忠镐, ?—?): 중공왕청현위원회 서기

1931년 2월부터 5월까지 중공왕청현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최홍기(崔洪基, 1887—?): 중공조령구위원회 서기

1887년 1월 29일 조선 경상북도 태생으로 1911년 2월 길림성 통화현으로 이주했다. 1920년 1월, 쏘련 울라지보스또크에 가서 공부하였으며 1922년 9월 흑룡강성 녕안현에서 ≪학우보≫를 편집하였다.

1930년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하여 중공녕안현위원회에서 동경성구위 서기로 있었고 현당위원회 조직부에서 사업하였다. 1932년 9월, 밀산으로 이동하여 당사업을 하였고 1935년에 중공조령구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5년 겨울, 흑룡강성 화천현에서 은거하면서 당조직과 련계가 끊어졌다. 1938년 9월, 흑룡강성 아성과 길림성 유수현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1948년에 다시 아성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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