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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김로숙-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재봉대 대장

김정함 길림신문 2023-08-03 15:01:11

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1. 사급 이상 장령, 시와 지구급 이상 중공 지도간부

김로숙(金鲁淑, 1906—1936):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 부녀 책임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재봉대 대장

1906년에 조선 경상북도 안동군 월곡면 사월동에서 태여나 1912년에 식솔들을 따라 길림성 통화현 청하자(青河子)로 이주하였다. 남만청년동맹에서 꾸린 야학교에서 한자와 조선문을 배웠고 남만청년동맹에 가입하였으며 1927년 하반년에 남만농민동맹 부녀회 지도사업을 하였다. 192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에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의 지시로 부녀대를 조직하고 반석로농유격대를 협조하여 전투에 참가하였다. 1933년 5월 7일,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 부녀 책임자가 되였다. 1933년 10월 27일, 양정우, 리홍광 등이 부대를 인솔하여 장백산지구로 진출하자 남편 리동광의 지시로 30여명의 무장사업대를 인솔하여 홍석립자근거지에 남은 부상자와 환자 10여명을 근거지 변두리의 밀림 속 산굴로 호송하는 임무를 완수하였다.

1934년 10월, 반석의 홍석립자를 중심으로 여러 밀영에 산재한 무기수리소, 피복공장(재봉대), 후방병원을 금천 하리로 전이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1934년 11월 7일,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재봉대 대장 겸 제1군 후방기지 주요 책임자가 되여 어린아이를 한족 농민에게 맡기고 반석, 이통, 화전 일대의 밀영들에 산재한 군인 가족들을 새로 개척한 금천 하리 쪽으로 전이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엄필순, 한진 등과 함께 하리의 곡류천(지금의 통화현 흥림진) 등 여러 곳에 무기수리소, 피복공장, 후방병원을 일떠세워 항일 후방 기지를 건설했다. 1935년과 1936년에 중공남만특위와 제1군 지휘부 련석회의, 중공남만림시특별위원회 제2차 대표대회 등 중요한 회의가 하리 후방 기지에서 열렸는데 그때마다 부대의 군수부문을 책임진 엄필순, 한진 등과 함께 회의의 절대적 안전과 식량 등 후근 보장을 책임졌다.

1936년 가을의 어느 날, 대청구숙영지에서 200여명에 달하는 일본수비대의 습격을 받았는데 엄필순과 함께 신변의 경위원과 녀전사들을 지휘하여 생사박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

(자료출처: ≪근대중국조선족녀걸≫)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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