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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리근숙 배성춘

김정함 길림신문 2023-08-30 13:31:19

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1. 사급 이상 장령, 시와 지구급 이상 중공 지도간부

리근숙(李瑾淑, 1909—1941):동북항일동맹군 제4군 부녀주임 겸 선전처 처장

리근숙(李根淑, 李瑾淑)은 조선 경상도 례천군에서 태여나 1914년에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으로 이주했다. 1927년 11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고 1932년 6월 중공수녕중심현위원회 부녀운동부 위원이 되였으며 그 해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12월, 밀산에 가서 활동하였으며 중공밀산현위원회의 설립에 참여하고 위원 겸 부녀구국회 주임이 되였다. 이 시기 현당위원회 서기 박봉남과 결혼하였다.

1934년 10월,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이 결성되자 부녀주임 겸 선전처 처장이 되였다. 1936년 10월, 조직의 파견으로 쏘련 모스크바에 가 동방대학에서 3년간 류학하였다. 1939년 7월, 흑룡강성 녕안현으로 돌아와 중공길동성위원회 서기였던 송일부의 변절로 파괴된 당, 단 조직을 재건할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0년 여름 동경성에서 체포되였으며 1941년에 동경성에서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배성춘(裴成春, 1902—1938):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위원, 동북항일련군 제6군 피복공장 공장장

배경창(裴敬昌)이라고도 불렀으며 1902년에 조선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태여나 부모를 따라 흑룡강성 탕원현 태평천으로 이주하였다. 1931년에 있은 9.18사변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932년에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그 후 현당위원회에서 조직한 화장선전대에 참가하여 한족들이 사는 부락에 들어가 한족집들을 찾아다니며 항일선전을 하였다.

1933년에 탕원의 지하당조직이 엄중한 파괴를 당하자 리재덕, 배옥순, 허정숙 등 젊은 녀성들과 함께 유격대에 참가하였다. 1934년 5월, 유격대가 서화가에 있는 대지주의 무장을 탈취할 때 재봉침 한대와 천을 몰수하자 이 재봉침과 천을 밑천으로 탕원유격대 피복공장을 세웠다. 적들의 끊임없는 ‘토벌’과 습격으로 재봉침을 이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제3군과 제6군이 만났던 모아산에 자리를 잡고 피복공장을 재건하였다.

1938년 3월, 련락원 조홍생이 적에게 체포되여 변절하는 바람에 제6군 피복공장이 적들에게 폭로되였지만 침착하고 과단성 있게 지휘하여 부상병들을 엄호하며 신속하게 후퇴시킴으로써 적들의 습격을 넘겼다.

이 해 3월에 들어서부터 적들이 자주 근거지를 침범하는 바람에 여러차례 부상병들을 피신시키고 적들을 따돌려 피복공장을 지켜냈다. 1938년 5월, 항일련군 제6군 군부교도대로 전근되여 두개 중대의 정치사업을 책임졌다. 1938년 11월 23일, 부대를 거느리고 이동하다가 보청현 장가요(张家窑)에서 적들과 만나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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