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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조명신 황정렬

김정함 길림신문 2023-09-18 13:13:01

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1. 사급 이상 장령, 시와 지구급 이상 중공 지도간부

조명신(赵明信, 1908—1936): 중공반석중심현위원회 위원, 중공서안지구위원회 조직부 부장

1908년에 조선에서 태여나 1920년에 길림성 반석현 하마하자(蛤蟆河子)로 이주했다. 1927년에 농민동맹에 참가했으며 1929년에 공청단에 가입했다.

1930년에 남만 일대에서 첫 녀성혁명가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중공반석현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반석, 이통, 해룡, 쌍양 등 지구의 부녀회 조직을 내오기 위해 때로는 한족부녀로, 때로는 새색시로, 혹은 부자집 아가씨로 변장하면서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1931년에 반동구에서 농민들의 항조항세(抗租抗稅) 투쟁에 참여했으며 리동광을 협조하여 반동구의 농민협회, 부녀회, 아동단 등 대중조직을 설립하고 농민들을 반일투쟁으로 이끌었다.

1932년초, 반석 일대에서 부녀회 조직을 동원하여 남편들을 유격대에 보내는 사업을 진행했으며 또 무기를 빼앗아 유격대에 보내군 했다. 같은 해 또 중공만주성위원회 군사위원회 서기 양림과 리홍광이 4월 3일, 5월 1일, 5월 7일 련속 조직, 지도한 농민봉기에 부녀들을 동원하여 참가했다.

1933년에 류하현 대천원(大泉源) 일대에 파견되여 농민회, 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대중 반일투쟁을 지도했다.

1934년 11월, 중공반석현위원회 위원이 되였고 1935년에 중공서안지구(오늘의 료양시)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되였다. 광산지구인 서안에서 한족옷을 입고 석탄을 줏는 탄부의 안해로 변장하여 대중들 속에서 혁명활동을 진행하였는데 탄부들 속에서 중공당원을 발전시키고 당소조 3개, 반일회 4개를 조직하여 당지의 반일투쟁을 새로운 고조에로 이끌었다.

당해 9월, 대검거 선풍을 피해 이통구(伊通区)당위원회로 철거했으며 이통에서 두도구, 반동구, 삼도하자구 등 지대에서 반일회, 부녀회를 묶어세우면서 어려운 투쟁을 견지했다.

1935년 12월의 어느 날 반석중심당위원회 서기 김창근과 함께 사업을 지도하다가 두도구 대간방자 부근 밀영에서 전사했다.

(자료출처: ≪집안항일투쟁사료≫)

황정렬(黃贞烈, ?—?):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부녀부 부장

원명은 황남순(黃南笋)이고 1935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동만에서 기층당지부 부녀간사, 구당위원회와 현당위원회 부녀간부로 있었으며 1935년 3월부터 1936년 1월까지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부녀부 부장을 지냈다. 1936년에 장백에서 중요한 당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권영벽의 조수가 되여 ‘부부’의 이름으로 장백 일대에서 지하당사업을 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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