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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고남일 김명시 김수복

김정함 길림신문 2023-09-27 13:14:06

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2. 퇀급 이하 좌급 군관과 위급 군관 및 현•구급 당지도간부

(동북항일련군 재봉대 책임자와 당지부 서기, 련장과 지도원, 중공특별위원회 소속 부녀부 책임자, 현과 구의 당위원회 위원 및 소속 부녀부 책임자)

고남일(高南一, ?—?): 화룡현부녀회 회장

1932년 10월부터 1933년 12월까지 화룡현부녀회 회장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김명시(金命时, 1907—?): 중공아성현위원회 부녀부 책임자

김희원(金喜元), 김휘성(金辉星), 김휘연(金辉然), 스베찌로바 등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조선 경상남도 마산 출신이다.

1925년 7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10월에 모스크바 동방로동자공산대학 류학생으로 선발되였다. 1927년 6월, 공산대학을 졸업하고 상해로 파견되여 8월 상해에서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상해조선인지부 조직부 및 선전부 책임자가 되였다. 같은 달, 중국공산당 한인지부 갑조 조장, 9월에 상해한인청년동맹 부녀부 책임자가 되였다.

1928년 5월, 상해에서 대만공산당 결성을 지원했고 6월에 동방피압박민족반제동맹주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1929년 10월,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중국공산당 및 공청단에 가입시키기 위해 북만주로 갔다.

1930년 5월, 중공아성현위원회 건립에 참여하고 부녀부 책임자가 되였다. 1931년 11월, 중공상해한인지부 선전부 책임자가 되였고 12월에 상해한인반제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8.15 해방후 서울로 돌아가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남조선민주련녀성동맹 선전부 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투쟁 인명사전≫)

김수복(金寿福, ?—1937): 장백현 십팔도구 상반구부녀회 위원 겸 십팔도구부녀회 주임

동북항일련군 전사 출신이며 1936년에 부상을 입고 장백현 십팔도구 주경동(朱景洞)촌에서 병을 치료하였다. 후에 십팔도구 상반구부녀회 위원 겸 십팔도구부녀회 주임이 되였다. 지하공작자가 된 후 부녀들을 동원하여 항일련군부대를 위해 신을 만들고 식량을 조달하는 등 후근지원사업을 조직, 지도했다. 1937년 단오절에 주경동촌에서 항일련군부대 부상자 회의를 하던 중 적 정탐군에게 발견되여 20여명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였다가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장백민속관광사이트, 2016. 5.)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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