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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 진정산 최금숙 최선일 최숙영

김정함 길림신문 2023-12-25 13:42:05

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2. 퇀급 이하 좌급 군관과 위급 군관 및 현•구급 당지도간부

(동북항일련군 재봉대 책임자와 당지부 서기, 련장과 지도원, 중공특별위원회 소속 부녀부 책임자, 현과 구의 당위원회 위원 및 소속 부녀부 책임자)

진정산(陈静山, ?—1941): 중공눌하현위원회 부녀부 부장

중공당원으로서 원명은 장정지(张静芝)이며 ‘녀진’(女陈), 진정지(陈静芝)라고도 했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에서 북만 항일부대로 넘어왔으며 동북항일련군 제3군에서 재봉대 대장과 제6군에서 련 지도원을 지냈다.

1939년 11월, 중공북만성위원회의 파견을 받아 눌하에 가서 현당위원회 교통원이 되여 눌하현당위원회와 중공북만성위원회 및 항일련군부대와의 련락을 책임졌다. 현당위원회 서기 윤자규(尹子奎)와 가짜부부(후에 조직의 비준을 거쳐 결혼하였음)가 되여 점포를 차리고 지하당사업을 전개하였다.

1940년초, 현당위 부녀부 부장이 되였다. 같은 해 10월, 동북항일련군 제3로군 제9지대 비서 상련생(尙连生)이 변절하여 북안에 오면서 현당위원회 기관이 파괴를 받고 윤자규 등과 함께 체포되였으며 1941년 9월 11일 치치할에서 일본헌병에 의해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항일명장 왕명귀 장군 회고록—충골≫, ≪우보합회고록—봉뢰송산객≫)

최금숙(崔今淑, 1908—1934): 중공왕청현위원회 부녀위원

1908년에 길림성 왕청현 소왕청 동일촌(상경리)에서 태여났으며 동일촌학교에서 4년간 공부했다. 1930년에 남편과 함께 혁명에 참가하여 부녀회 사업을 했다. 1931년 9월, 추수투쟁 당시 부녀회원으로 참가하여 부상자들을 간호했다.

1932년에 남편 최창빈이 무장자위단과 싸우다가 희생된 후 소왕청구(제2구)의 부녀위원이 되여 당해의 춘황투쟁에 참가했다. 1933년 10월, 중공왕청현부녀위원회 책임자가 되여 1934년 봄 사이에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대한 일본군의 여러차례의 ‘토벌’에 맞서 련락임무와 환자간호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1934년 봄, 페병과 위병이 도진 중공동만특별위원회 서기 동장영의 간호임무를 수행하다가 3월 21일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던 중 동장영과 함께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최선일(崔鲜一, ?—?):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부녀부 부장

1933년 9월부터 1934년 4월까지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부녀부 부장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최숙영(崔淑英, ?—?):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부녀부 부장

1930년 10월, 리인활의 뒤를 이어 1931년 9월까지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부녀부 부장, 동만부녀회 주임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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