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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의 로고와 심혈이 배여있는 건물입니다”

정현관 길림신문 2024-05-15 06:49:43

[그때 그 이야기] 제1자동차 조선족로인협회 활동실

“선배님들의 로고와 심혈이 배여있는 건물입니다”

장춘시 동풍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문광로와 장청로 사이의 록화지에 붉은색 벽돌로 지은 단층 건물이 눈에 뜨인다. 건물 근처에 다달으면 입구 벽에 ‘로인의 집(老人之家)’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이 간판은 당시 장춘제1자동차공장 공장장이였던 경소걸(耿昭杰)이 쓴 친팔 간판입니다. 이는 우리 조선족 간부와 로동자들의 공헌에 대한 장춘제1자동차공장의 긍정과 감사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고 현임 제14기 장춘제1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 박룡익 회장이 말했다.

 장춘제1자동차공장 전임 공장장 경소걸(耿昭杰)이 쓴 ‘로인의 집’친팔 간판

1953년 7월에 건립된 ‘공화국의 장자’ 장춘제1자동차공장은 초창기부터 생산직장과 연구실 그리고 행정부서에 이르기까지 특수한 년대에 특수한 공장에서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해낸 로일대 조선족 건설자들의 헌신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활동실은 우리 선배님들의 로고와 심열이 배여있는 큰 의미가 있는 건물입니다. 1995년에 건설하여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고 박룡익 회장이 말했다.

1987년, 초기 회장인 김영자할머니를 비롯한 장춘제1자동차공장에서 퇴직했던 로인들이 마음을 합쳐 장춘제1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를 설립했다. 협회가 설립되면서 공장에서는 조선족 퇴직로인들을 위해 단독으로 종업원활동중심에 작은 방을 하나 내주었고 거기서 조선족 로인들이 퇴직후 ‘마지막’ 조직에 가담해 행복한 로년생활을 보냈다.

제14기 장춘제1자동차공장로인협회 박룡익 회장

시간이 지날수록 협회에 가입하는 로인들도 많아지고 무용이며 등 여러 활동을 조직하기에는 공간이 제한을 받게 되였다. 이런 현실에 대비해 1995년 당시 장춘제1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 제4기 박동임 회장을 선두로 협회의 로인들은 새로운 활동실 장만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박룡익 회장은 “박동임 회장이 6일 만에 자동차공장 9개 부문을 찾아 다니면서 승인 도장을 맞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진행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감탄했다. 부지 선택부터 시작해 소방, 전기, 환경 등 부문의 승낙을 짧은 시간에 받을수 있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우리 로일대 조선족 선배들이 그동안 많은 공헌을 해왔기에 공장에서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렇게 빨리 허락해주고 빨리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입니다.”고 말하면서 “거기에 더불어 그때 선배님들이 각 작업장을 다니면서 10여만원의 협찬금을 받아왔습니다. 그때 10만원은 정말 큰 돈이였습니다. 우리 선배님들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런 선배님들이 협회일을 자기 집안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오늘이 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선배님들의 로고에 감사를 토로했다.

 자동차공장 9개 부문의 승인 도장이 찍힌 심사비준서

서류상의 절차는 모두 마쳤고 10만원의 협찬까지 받았지만 정식 시공에 들어가기에는 자금이 역부족했다. 그리하여 70세, 80세 되는 퇴직한 남성 로인들이 아침에 일찍 장춘역에 나가 짐들을 나르면서 푼삯을 받아 조금씩 돈을 모았고 녀성 로인들도 모금에 발벗고 나섰다.  

“그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활동실을 짓는 일이니 그렇게 힘들어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렸던것 같습니다.” 며 당시 랭면을 팔며 모금에 나섰던 박현자 로인이 말했다.

박현자 로인의 말에 따르면 퇴직한 녀성분들은 아침에 일찍 관련 식자재를 들고 공장 식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공장 식당에 쪽방을 하나 구해서는 거시서 육수를 만들어 면을 불렸다. 준비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밀차에 실어서는 각 작업장을 다니면서 랭면을 팔았다.

활동실 건설 당시 로인들이 일하는 장면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마 둘이서 한조를 묶어 팔았던 것 같습니다. 총 여섯개 조가 있었는데 많이 파는 조는 점심시간에 120그릇씩 팔았습니다. 나중에 통계해 보니 총 3만원이 넘었습니다. 그때 한그릇에 3원씩 했으니 아마도 1만그릇은 팔았을 것입니다”고 박현자 로인이 말했다.

게다가 경비를 절약하고자 일부 로인들은 직접 건축자재를 지원하는가 하면 모든 전기 설치와 같은 손수 할 수 있는 작업을 로인들이 직접 나서서 하나하나 완성했다. 그렇게 로일대 조선족 선배들이 고생으로 지은 활동실은 지금은 그야 말로 장춘제1자동차공장에서 퇴직한 조선족 로인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되였다.

활동실 건설 당시 로인들이 일하는 장면

“여기를 출근합니다. 아침에 일찍 도시락을 싸서 여기에 옵니다. 문예활동을 위주로 무용, 합창, 시랑송 등과 함께 윳놀이, 공던지기 등 활동을 하고 점심에는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아주 즐겁게 하루를 보냅니다.”라고 주혜숙 로인이 이야기했다.

주혜숙 로인의 말에 따르면 초장기 로인협회는 전부 장춘제1자동차공장에서 근무하고 퇴직했던 조선족 로인들로만 구성되였지만 지금은 그 가족 성원들까지 협회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협회에 약 100여명의 로인들이 있는데 그중 당원은 약 44%를 차지하며 90세가 넘는 로인이 3분 계신다.

활동실 건설 당시 로인들이 일하는 장면

박룡익 회장은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견결히 옹호하고 사회주의 조국을 사랑하며 현재의 행복한 생활에 만족하는 것을 가장 큰 취지로 두고 있고 장춘제1자동차공장로인협회는 부동한 애호, 부동한 경력, 부동한 수요를 가지고 있는 협회 로인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만족시킬가가 가장 큰 임무라고 한다.

“일반 종업원에서 고급 관리일군까지 다양한 분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수요도 다릅니다. 우리 선배님들의 로고와 헌신을 잊지 않고 로인들을 더 잘 봉사할 수 있는 그런 협회로 발전하도록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박룡익 회장이 말했다.

/길림신문 정현관 오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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