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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올케의 꼬부랑 허리

안상근 길림신문 2024-07-11 14:08:58

조카들이 농장을 꾸리면서부터 나에게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주어진 시간이 따로없이 드나들수 있는 기회가 차례졌다. 

농장으로 갈 때면 의례 올케한테 들려 문안인사를 올린다. 내가 자라면서 큰 올케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응당 자주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인데 출가외인이라서 그런지 도리는 번연히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또한 나의 실정이다. 올해의 농장나들이도 두릅 따러 가는 일부터 시작되였다.

자전거를 타고 큰 길에 나섰다. 올리막에서 자전거 타기란 의외로 힘들다.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잔뜩 낮추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느라면 온 몸의 땀구멍이 서로 뒤질세라 활짝 열린다. 길 수리를 하느라 파헤쳐 놓았는지 울퉁불퉁한 길은 얼굴근육까지도 움씰움씰 아래우로 움직인다. 자전거 안장에 얹은 엉덩이는 한시도 붙어 있을 사이 없다. 그래도 마음만은 상쾌하다. 페부를 파고드는 봄바람에 상큼한 풀내음이 한결 기분을 돋구어 주고 파릇파릇 얼굴을 내민 새싹들이 자기를 보아달라고 불어오는 봄바람에 손을 흔들어 준다. 저 푸른 하늘의 흰 구름도 바람에 실려 둥실둥실 어데론가 떠가고 있다. 겨울 한철 집에만 박혀있으면서 신선한 밖의 공기를 마셔보지 못한 쭈그러진 마음의 주름살이 오늘 한꺼번에 활짝 펴지는 것만 같다.

자전거를 세우고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오늘 내가 온다는 소식을 조카한테서 들었는지 베란다 쏘파에 앉아 있던 올케가 웃는 얼굴로 반겨준다.

“안녕하세요? 그간 잘 있었어요?”

“고모 왔어요? 휴식도 못하고 일하러 왔네.”

저 꼬부랑 허리? 내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올케의 웃는 얼굴보다는 꼬부라진 올케의 허리가 내 눈길을 더 잡아끌었다. 솟아오른 작은 산봉우리를 방불케하는 올케의 굽어진 허리가 내 눈을 유난히 자극한다.

한생을 농촌부녀사업에 몸담그고 일해 오신 올케의 젋었을 적 별명은 ‘새벽 닭’,‘무쇠 처녀’,‘꼬리 없는 소’였다. 대채식 대대로 부상되였던 내 고향은 이른새벽부터 어둠이 깃들 때까지 농민들은 일밭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다그쳐야 했다. 별을 이고 일밭에 나가고 달을 지고 돌아왔다. 저녁이면 밤늦도록 회의를 소집하였다. 아침마다 집집에 다니면서 부녀자들을 깨워서 아침밥을 짓게 재촉하는 일과 저녁 밥 술이 떨어지기 바쁘게 또 생산대 회의를 한다고 집집이 다니며 통지를 하는 일을 올케가 도맡아하였다. 일밭에 나가면 누구보다 드센 감농군이였고 부녀들을 이끄는 선줄군이였다. 파종할 때 비료 주기,콩심기,옥수수심기,모내기전 논두렁 감기,벼모내기,사래긴 조 밭 첫 벌 기음 매기,돌밭에서의 콩밭 기음 매기,원경지 감자밭 매기,담배잎 따기,건조실에 담배잎 달기,가을 하기,조이삭 짜르기,옥수수이삭 따기, 벼 탈곡 하기,토양개량 하기,소수레로 농가비료 나르기,제전 만들기,거도 파기...농촌에서 해야 하는 어느 일인들 올케의 손이 가지 않은 일이 있었으랴! 거기에다가 밤이면 왕복 15리길을 걸어서 아이를 업고 남편과 함께 대대간부회의에 참가해야 했다. 그래서 전 현적으로도 올케의 이름을 말하면 아는 사람이 적었지만 ‘새벽 닭’,‘무쇠 처녀’,‘꼬리 없는 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고향마을의 구석구석에는 올케의 삶의 흔적이 력력히 찍혀있었다. 봄날의 눈부신 아지랑이와 한 여름의 무더운 열기와 가을의 무르익은 오곡 향기와 겨울철의 매서운 칼바람이 하나하나 올케의 뼈속을 비집고 들어가 아픈 ‘진주’로 자리잡았다. 조개의 진주는 모래알 때문에 난 상처가 만들어 낸 조개의 아픔이라고 한다. 올케의 꼬부라진 허리속의 ‘진주’는 올케가 걸어온 힘든 삶의 무게가 만들어낸 아픔일 것이다.

나에게 올케는 엄마였다. 아들 셋을 키우면서도 올케는 나에게 엄마사랑 못지 않은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었다. 고중을 다니면서 나는 올케와 함께 있게 되였다. 나와 조카들은 먹을 것이 생기면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 십여리 길을 도보로 등교해야 했던 나는 올케한테는 큰 짐이였다. 아침 일찍 새벽밥을 먹고 길을 떠나야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 학기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다섯시전에 깨워서 새벽공부를 하게 하고 배를 곯을세라 내 앞으로 밥을 자꾸 밀어놓군 하였다. 이렇게 일곱학기나 함께 지냈다. 올케의 정성때문에 공부에서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내 집 식구 밥상을 차리자고 해도 엄청 부담이 가던 세월에 군 식구 하나 더 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을것이다. 그것도 ‘바늘이 네 쌈’이고 ‘고추보다 맵다’는 시누이를 둔다는 것이 올케한테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이였을까? 그러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드러내지 않고 몇년간 공부시중을 해 주었다. 나에 대한 올케의 사심없는 사랑이 하나하나 쌓여 허리를 내리 누르는 작은 바위가 되면서 꼬부라져가는 올케의 허리에 더 큰 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싶어 올케한테 한없이 미안하다. 내가 만약 시누이와 함께 있는다면 과연 올케처럼 사심없는 사랑을 쏟아 부어 줄수 있을가 하고 반성해 보기도 한다.

내가 결혼상대를 찾을 때의 일이다. 혼사말이 오고 갈 때가 되자 맏며느리로는 절대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소개가 들어오면 제일 처음으로 “항렬에서 몇째인가?”부터 물었다. 맏이라고 하면 그 즉시로 아웃이였다. 하지만 운명의 조롱이라고 할가? 올케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맏며느리 운명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가정을 이루고나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다른 고생을 밥먹 듯 하였다. 그래서 올케한테는 내가 세 아들을 젖히고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다.

올케의 저 꼬부라진 허리에는 집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바쳐 온 청춘의 흔적이 그대로 내려 앉았다. 촌민들의 생활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걸어온 올케의 발자욱자리와 얼굴을 씻어 내리는 땀과 매사에 들인 공력과 사업에서 받아당한 스트레스들이 결국 올케의 꼬부라진 허리와 피페해진 몸을 만들어냈다. 

올케의 저 꼬부라진 허리에는 가정을 위해 한생을 바쳐온 삶의 무게가 살아온 세월과 함께 그대로 내려 앉았다. 한 가족의 큰며느리라는 이름때문에 우로는 년로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아래로는 주렁주렁 시동생들을 돌보고 그들이 가정을 이루는데 한몫 담당해야 하고 자식까지 키워내야 했다.

세월의 흔적이 얼기설기 주름이 되여 고스란히 내려앉은 얼굴, 풀물에 절여지고 쟁기자루에 몸살을 받아 뼈마디가 불거지고 장알이 더덕더덕 박힌 투박한 손,발 뒤꿈치가 터덜터덜 갈라지고 신 모서리에 닳아 모지라진 발톱에는 한생을 다른 사람만을 위해 살아온 올케의 헌신적인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있다. 올케의 일생을 되돌아보느라면 측은한 마음에 어느 사이 코 끝이 저려나고 눈 앞이 흐려진다.

자식들의 련속되는 사업 실패의 쓴맛을 가슴속 깊이 삭히면서 묵묵히 홀로서기 할때까지 지켜보아야 만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자식들은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깊이 헤아려 볼수 있었을가? 남 모르게 끓어 오르는 어머니의 활화산같은 용암이 오랜 시간동안 묵묵한 기다림 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영양분이 되여 자식들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여 끝내 홀로서기를 할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올케의 허리는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들을 감당해야 했을까? 촌민들을 이끄느라 집집의 출입문 손잡이에 손때를 묻혔고 남편 공대를 하느라 하루 세끼 부엌으로 오르내렸고 시부모님께 효도하느라 어느 명절 한번도 허리 펴고 시름놓고 휴식 한번 못해 보았다. 시동생들 살피느라 쌀뒤주 굽이 났고 아들 셋을 키우느라 손발이 놀 새 없었다. 힘들었던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올케의 꼬부라진 허리는 촌민들을 위해 바쳐 온 올케의 사심없는 마음의 흔적이고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올케의 드팀없는 사랑의 표징이다. 올케는 부녀들의 선줄군이였고 촌민들의 코기러기였고 우리 가족의 기초돌이였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기댈수 있었던 커다란 산이였다.

내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하는 올케의 꼬부라진 허리지만 올케의 손발은 한시도 놀 사이 없다. 이 여름에도 농장을 꾸리는 두 아들의 뒤시중까지 하면서도 뜰안의 마늘밭과 가지와 고추와 오이밭을 풀 한포기 보일세라 알뜰하게 가꾸어 놓았다. 소일거리로 키우는 닭 몇마리는 닭장안에서 올케의 자취만 들어도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온다. 하루에도 몇번씩 모이를 주고 물을 주느라 오가다 보니 닭들이 아마도 주인의 발자취소리에길들여진 모양이다. 한알, 한알 닭알을 정성스럽게 모아서는 이번에는 큰 아들네를 주고 다음번에는 둘째 아들네를 주고 거기에다가 나한테까지 한 몫 보내주느라 정작 올케의 입에 들어가는 닭알은 가물에 콩나듯이나 할가? 울바자밖 작은 꽃밭에는 올케의 정성어린 손길에 보답이라도 하는듯 여러가지 꽃들이 시기에 따라 활짝 피여나 오가는 길손들을 반겨준다. 

로년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말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일까? 80고령의 올케는 옛날 본색을 잃지 않으려는 듯 오늘도 꼬부라진 허리로 집안팎을 보살피고 있다. 집안으로부터 베란다까지 먼지 한 점 있을세라 알뜰하게 쓸고 닦았다. 뜨락의 고추,가지,오이,상추,부추,파,마늘,채당콩,찰옥수수들이 우썩우썩 키돋움하고 울바자 밖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올케의 삶도 그렇게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는 것 같다.

/최진옥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