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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대병’아저씨

김태국 길림신문 2024-08-28 12:57:59

허송절(도문)

그해 여름, 어린 소녀였던 나는 집에서 학질이라는 모진 병을 앓고 있었다. 시간을 맞추듯이 주기적으로 덜덜덜 떨며 앓는 그병은 진짜 사람의 진을 다 빼게 하였다.

아버지가 교장이다 보니 우리 집은 학교 바로 뒤에 있었다. 집 마당이자 학교 뒤마당이고 학교 마당 전체가 눈 안에 다 들어오는 그런 집이였다.

그해 따라 여름 내내 내리는 장마비는 멈출 줄 모르고 줄창 내렸는데 어느새 강뚝과 논도랑을 밀어갔으며 푸르싱싱 벼파도 넘실거리던 논밭은 물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어느 날인가 홍수방지에 나선 해방군 아저씨들이 방학이여서 비여있는 학교에 류숙을 정했다. 해방군 아저씨들은 학교 뒤마당에 풍천을 쳐놓고 식당을 만들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 반찬을 볶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를 해방군 식당 근처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단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식당 옆을 지나다가 취사원 아저씨들이 하얀 밀가루를 밀어서 기름을 조금 두르고 설탕도 조금 넣고는 돌돌돌 말아서 또 다시 밀대로 밀고 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 보다가 그 떡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다만 저렇게 구운 떡은 얼마나 맛있을가 상상을 하면서...

그날도 한창 추위에 너털듯이 학질병을 하며 혼자서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너무나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사실 그때는 아파도 약도 별로 없었고 아버지 어머니는 일때문에 날 보살필 겨를이 전혀 없었다. 난 그저 혼자서 묵묵히 병마와 버티는 중이였다. 

눈을 떠보니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를 가진 군인모자를 쓴 아저씨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을 떴구나. 괜찮으냐?”

웬걸, 아저씨는 우리말로 묻는 것이였다. 아, 군대 아저씨들은 모두 한어로 말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조선족 군대 아저씨라니!

“이 대병을 좀 먹어봐라.”

“대병?”

처음 듣는 떡이름이였다. 둥그렇게 커다랗게 빚은 밀가루 떡이였다. 아저씨는 한겹한겹 벗겨서 내 입에 넣어주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고소한지 세상 행복을 다 가진듯한 그런 맛이였다. 대병을 먹고 기운을 차렸는지 기적같이 병이 나았다.

학교 마당 주위에는 커다란 백양나무들이 키높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나무 주위에는 새하얀 버들버섯이 많이 돋았다. 비가 내린 이튿날 내가 소래를 들고 하얀 버섯을 가득 캐가지고 들어오면 엄마가 버섯을 넣고 보글보글 장국을 끓여주었다. 엄마는 버섯이 닭고기 맛이 난다고 하였고 난 우리 동네 그 누구한테도 내가 아는 그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백양나무 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였으며 반찬이 맛 없으면 나는 비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 비밀스러운 곳을 나는 대병을 가져다준 아저씨께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이제 비가 오면 한번 가서 따서 드시라고, 새하얀 버섯이 얼마나 곱고 맛있는지 모른다고 얘기드렸다. 며칠후 기다리던 비가 내렸지만 난 버섯 따러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가보았더니 새하얀 버들버섯이 시커멓게 물앉아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아까운 걸 아저씨도 참.” 그렇게 난 대병아저씨로부터 대병을 얻어 먹은 은혜를 갚을 수가 없었다.

며칠후 아저씨들은 홍수방지 임무를 마치고 학교 뒤마당의 커다란 가마랑 다 빼가지고 가버렸다. 감칠맛 돌던 냄새랑 웃음소리랑 모든 걸 다 가지고 떠나갔다. 아무런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대병아저씨는 떠나갔다. 어린 소녀였던 마음에도 대병아저씨의 모습이 늘 떠나지 않았고 한번 쯤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은근히 하고 있었다. 

우리 마음속에서 해방군 아저씨들이 최고였던 그 시절, 해방군 아저씨를 만나면 우리는 “해방군 아저씨,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군 하였다.

나한테는 더군나다 ‘대병’사건이란 흐뭇한 추억이 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그렇게 홍수도 물러가고 아저씨들도 돌아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그날도 동생을 업고 길가에 서 있는데 저 멀리서 해방군 아저씨들 대렬이 척척 걸어오고 있었다.

'저 속에 대병 아저씨가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생을 내려놓고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꿈만 같았다.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전한 모습의 아저씨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면서 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대병’아저씨만 쳐다 보았다. “아저씨 반갑습니다.” 인사 한마디 못 올린 채 ‘대병’아저씨는 대오와 함께 점점 멀어져 갔다...

세상에서 제일 멋있던 군대 아저씨들, 그중에서도 가장 생각나는 ‘대병’아저씨. 이젠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소녀의 ‘대병’아저씨는 지금도 내 마음속의 스타로 우렷이 남아있다. 

编辑:김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