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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석양은 왜 아름다운가? 

길림신문 2025-04-15 15:48:47

(연길)리정희 


오늘 석양을 바라보며 문득 사색에 잠긴다. 석양은 왜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가? 해가 서산에 다달은 순간, 하늘은 온갖 색갈로 물들어 마치 화가가 붓을 휘둘러 그린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다. 주황, 분홍,금빛이 어우러져 저녁하늘을 수놓은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황홀하다. 

석양이 강물우로 기울면 물빛은 황금색으로 물들고 발 아래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점점 흐릿해 진다. 어느새 내 삶에도 이런 시간이 찾아왔다. 황혼, 이 단어를 입에 올릴때면 저도 몰래 말 못할 담담함이 밀려 오지만 동시에 익숙한 위로가 스며들어 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부르하통하를 거닐면서 석양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 오른다.그때 어머니께서는 "석양은 하루의 마무리를 예쁘게 장식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란다" 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다. 그때는 그 말의 깊이를 잘 리해하지 못했지만 석양이 삶의 려정을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지난 가을 우리 부부는 산책을 나가 모아산 아래 세전이벌을 거닐었다. 발 아래로 펼쳐진 논밭은 황금 빛으로 익어가고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오히려 더욱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황에서 진홍, 자주 빛까지 쌓인 색이 마치 인생의 황혼려정과 닮아 보였다. 젊은 날의 강렬함, 중년의 풍요로움, 그리고 로년의 잔잔함이 한데 어우러 진듯 했다.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 광경에 빠져 들었다. 묵묵히 걸어 가다가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잡으며 우리도 석양처럼 아름답게 나이들면 좋겠다며 살짝 미소를 보냈다.

어느 가을 날, 락엽이 쌓인 공원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인생의 박자가 들렸다. 급하게 걷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멈춰서서 하늘을 보는 사람, 그 각자의 속도가 그대로의 삶이 굴곡인듯 싶었다. 나는 이제 그 속도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다. 락옆 하나에 시선을 주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 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길 여유를 찾고 싶다. 옛 사진을 넘기며 웃고, 오랜 친구와 통화하며 수다도 떨며 이런 저런 작은 추억 속에서도 만족감을 찾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하면서 석양처럼 은은하지만 사라지기전 더욱 선명해지는 강렬한 빛 그 뒤에 드리운 노을을 보련다.

퇴직 후,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 것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퇴직 후 나에게는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나는 글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빈 종이를 바라보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 되였다. 하지만 점점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되였다. 나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서 나는 각종 잡지사와 신문사에 글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 작품이 실렸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글이 세상에 나갔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그 후로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여러 매체에 발표했다. 매번 글이 실릴 때마다 나는 새로운 성취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석양빛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평안함과도 같았다. 석양빛은 하루의 끝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것은 마치 나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패기는 이제 석양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빛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석양빛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짬만 나면 글을 쓴다. 이제 나는 예순을 넘긴 나이이다. 젊은 시절의 패기와 열정은 조금 줄어 들었지만 그 자리를 여유와 지혜가 채워 주었다.그리고 석양 빛 속에서 나의 글쓰기 려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석양빛처럼 불타고 싶은 마음이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질때 하늘은 잠시 화관를 쓴듯 찬란해 진다. 예전에는 이순간을 놓칠가봐 안달했지만 이제는 그 빛이 스민 공기를 호흡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순간의 빛을 영원히 가둔 그림처럼 나도 매일의 노을을 마음에 담아 보련다. 세월이 고여 만든 주름속 미소를, 다 닳은 신발 밑창에 더 많은 길을 담아 내면서 이제는 그 굴곡을 어루 만지며 내 인생을 읽어 보련다. 피부 아래로 드러난 이마의 세로 줄, 눈가의 잔주름, 시간의 저축이야 말로 진정한 자서전이다. 스무살의 나, 마흔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서로 다른 속도로 어우러져 내 발자국을 만들었다. 젊은 날의 려정, 중년의 고뇌, 지금의 평정 모두 다른 색갈이지만 어우러지면 황금빛이 된다. 오래된 와인처럼 삶도 깊어 질수록 풍미가 진해 진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진정 석양의 빛이 아름다운 리유가 아닐가 싶다. 

오늘도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석양을 맞이 한다.해빛이 창문틈으로 스며들어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마냥 스쳐 지나간다. 젊은 날들의 고생과 기쁨,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추억들이 석양빛에 물들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남기고 간 모든 사연들이 하나, 하나 빛나는 리유를 이제야 알 것 갔다. 석양이 빛나는 비결은 아마도 그 순간의 순수함에 있을 것 이다. 지는 해는 아쉬움 보다는 오늘을 잘 마무리 했다는 만족 감으로 빛나야 한다. 그 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채롭게 반사되지만 석양이 아름다운 리유는 단지 화려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매일매일을 그렇게 살아 간다면 지는 해가 주는 그 찬란한 작별 인사가 두려울 것도 없으리라! 

창밖으로 어스름이 내려 앉는다. 오늘도 또 하나의 석양이 저물어 가지만 래일의 해 돋이를 기다리며 오늘의 석양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빛을 잃은 순간 조차 세상을 아름답게 물 들이는 석양처럼 내 인생 한구석에 남은 하얀 여백에 나의 모든 순간이 빛나기를 소망해 본다.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