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 금성촌의 믿음직한 현대농업 리더 리학명
차영국 길림신문 2025-04-18 08:38:39서란은 경내에 송화강과 라림하 두 하천이 흘러지나고 흑토지가 비옥하여 우수한 품질의 쌀을 생산해 ‘중국 생태입쌀의 고향’이라 불린다.
1982년 전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서란현(1992년 10월에 서란시로 변경)의 조선족 인구는 2만 8,356명으로 길림지역 조선족 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특히 평안진이 6,721명으로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향진이였다. 이는 평안벌이 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지, 호란강의 풍부한 물자원 등 벼농사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서란시 평안진 금성촌 촌주임 리학명
1924년, 평안벌에 첫 벼농사의 씨앗을 뿌리다
1924년, 조선족 이주민 오주학, 박춘선 일가가 평안벌에 터를 잡고 보(둑)를 쌓고 물레방아를 돌리며 이 지역 최초의 벼농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30여년 후인 1956년 평안벌의 벼농사는 헥타르당 수확량 1만근을 돌파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금성촌 당지부 서기 김옥만은 이 놀라운 성과를 인정받아 전국 로동모범으로 선정되었고, 모주석과 주은래 등 중국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조선족 농업 전문호들의 활약, 그리고 평안벌의 오늘
오늘날 금성촌에는 수십헥타르, 심지어 백여헥타르의 논을 대규모로 도급받아 운영 하는 조선족 벼농사 전문호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근년에는 금성촌의 토지 임대료가 무(천평방메터)당 1,200원을 기록하며 평안벌이 여전히 조선족들에게 소중한 농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한세기 전, 오주학과 박춘선 일가가 시작한 작은 벼농사는 오늘날 평안벌을 중국 생태입쌀의 핵심 산지로 성장시켰다. 조선족 이주민들의 노력과 혁신이 만들어낸 이곳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닌 력사와 정신이 깃든 삶의 터전이다.
과거 황량했던 이 땅은 조선족 이주민들의 노력으로 문전옥답으로 변모했고 오늘날 서란의 벼 재배면적은 약 5만헥타르 년간 생산량은 40만톤에 달한다. 현지 농업 기업들은 친환경 생태 농법을 도입해 고품질 쌀 생산의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학명농장의 모종 하우스
리학명과 학명농장, 생태 농업의 선구자
평안진 금성촌의 농업 전문가 리학명(51세)은 123헥타르 규모의 고품질 생태 논을 운영하며 오리 농법을 결합한 유기농 쌀 재배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농장은 서란시농업투자발전유한회사로부터 '유기벼 원료 기지'로 공식 지정받았다.
또한 학명농장은 전통 농업을 넘어 관광 농업으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논밭에 공중 다리와 전망대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즐길수 있도록 했다.
리학명은 학명농장의 대표이자 금성촌 촌주임으로서 마을의 토지 관리와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현재 금성촌의 경작지는 550헥타르로 촌민위원회에서 90% 이상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리학명과 마룡환이 공동 운영하는 합작사는 123쌍의 논을 관리하며 서란지역 조선족 농촌마을중 최대 규모의 농업 생산을 이끌고 있다.
학명농장의 관광코스를 따라
도시화 속에서도 꼭 지켜내야 할 농촌의 미래
올해 초, 서란시농업농촌국의 지원을 받아 건설된 금성촌김치공장이 생산에 교부될 준비를 마쳤다. 공장은 기존 금성촌사무실 청사를 리모델링해 생산 라인과 랭동 창고를 갖추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설비 설치가 완료된 상태이다.
리학명 촌주임은 "법인 설립 절차와 수출 허가가 완료되는 대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수출 70%, 내수 30%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식제로 리익을 배분해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성촌의 이번 변화는 도시화와 해외 진출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농촌을 떠난 상황에서도, 리학명 촌주임과 같은 든든한 리더십과 신세대 농업인들의 도전이 만들어 낸 희망적인 신호이며 앞으로의 금성촌의 밝은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리유이다.
/차영국기자
编辑:유경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