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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복 부자, ‘미니촌’에서 유기농업의 ‘큰 그림’ 그린다

오건 길림신문 2025-04-28 11:21:36

―촌민 13명인 서란시 개원진 대흥촌, 서정복 서일광 부자의 유기입쌀 불티나게

비닐하우스에서 벼모 자람새를 살펴보고있는 서정복(오른쪽)과 서일광 부자

최고 130명 삯군으로 22헥타르 유기벼 고집하는 ‘미니촌’

“김매기철에 최고로 130명 삯군이 저의 논판에 엎드려 김을 매는 모습은 말 그대로 가관이지요. 22헥타르 논에 전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농약 한방울, 화학비료 한줌 뿌리지 않습니다. 벼모내기, 벼가을 등도 전부 인공으로 합니다. 작년 한해 인건비만 저그만치 25만원 남짓 들었습니다.”

최근, 기자 일행이 찾은 서란시 개원진 대흥촌에서 촌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서일광(35세)은 이같이 소개했다. 

현재 마을에는 촌민이라고 해봤자 6가구에 13명이 전부이다. 그중에서도 로인이 10명이나 되여 서정복 일가의 삯군은 전부 린근 마을의 촌민들이라고 한다.   

기자들과 동행한 서란시조선족로인협회 량태은(80세) 회장은 촌로입협회 서정복(69세) 회장이 촌당지부 서기를 맡던 20여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 

량태은 회장과 서일광 서기, 서정복 회장이 대흥촌촌민위원회 앞에서

“내가 재직시절에 향당위 서기만 13년을 해서 잘 알지요. 서란시에 조선족촌이 최고로 33개까지 됐는데 현재는 12개가 남았어요. 서정복 회장에게 가장 탄복하는 것은 현재 전 시에서도, 가능하게 전 성에서도 가장 작은 이 촌을 다른 촌에 합병되지 않도록 지금까지 굳건히 지키면서 수십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겁니다.” 량태은 회장은 서정복 회장을 이같이 평가한다.

서란시의 많은 조선족촌들에서 ‘도화향’ 브랜드 벼를 심고 있다. 서일광이네도 례외가 아니다. 하지만 논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기에 헥타르당 생산량은 다른 촌보다 훨씬 적었다. 다른 촌들은 헥타르당 생산량이 보통 벼로 1만 5천근에서 1만 6천근 사이 나는데 서일광이네 유기농 논은 헥타르당 1만 1천여근 남짓밖에 안된다.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는 서란시 개원진 대흥촌 당지부 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 서일광 

대신 그들은 유기입쌀의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한 비싼 가격에 승부수를 두었다. 보통 입쌀 가격이 근당 5, 6원에 그치는 반면, 서일광네 유기입쌀은 주머니 포장의 경우 10근짜리를 10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진공포장의 경우, 근당 15원에서 최고 30원까지 팔리고 있었다. 특히 남방지역에서는 선물용으로 더욱 세련되게 포장한 30원짜리 입쌀이 15원짜리보다 더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길림지역에는 전부 무료로 발송하는 외, 성내 기타 지역과 국내 다른 성에 발송할 경우에는 소정의 우편료가 붙는다고 서일광은 말했다. 

서일광 서기가 유기입쌀 진공포장을 소개하고있다.

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의 창고에는 벼마대가 가득 쌓여있다. 작년 생산량의 30% 가량 되는 량이다. 전부 다 팔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 대신 단골손님을 놓치게 된다면서 여름철에 대량의 주문이 재차 쏟아지면 정미하여 판매할 타산이라고 서일광은 말했다.  

백년일우의 특대홍수와 함께 돌변한 마을의 현황

“촌에 63헥타르의 논이 있는데 제가 법인대표로 있는 서란시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에서 3분의 1 이상을 붙이고 있는 셈이지요. 2023년 백년일우의 특대홍수가 서란시를 덮쳤을 때 대흥촌도 빗겨나가지 못했어요. 지세가 높은 촌민위원회 사무실이 1.5메터까지 잠겼고 지세가 낮은 곳에 위치한 살림집들은 2메터까지 잠겼어요.” 

서일광 서기가 홍수의 침습에 넘어질번 한 촌의 수도물공급소 건물앞에서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서일광 서기와 그의 부친인 서정복 회장이 촌민들을 제때에 안전한 지역에 대피시킨 덕에 촌에 홍수로 인한 사상자가 없었다. 

홍수가 할퀴고 지나간 마을 주택은 전부 위험건물로 변했다. 그런 와중에도 서정복이 지은, 후에 촌에서 사들인 촌민위원회 사무실은 유독 끄떡 없어서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내의 모든 시설은 전부 교체해야만 했다. 

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의 농기계가 전부 홍수에 밀려가면서 생긴 30만원의 경제손실을 포함해 서광일 가정은 도합 80만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친환경적인 전통적인 농사방법으로 유기벼를 재배하여 판매하려는 그들의 신심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홍수는 무정하지만 서란에서도 가장 작은 이 행정촌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배려와 경제적 지지는 줄지 않았다. 주택 보조금 외에도 길이 500메터 길이, 너비 4.5메터의 세멘트 촌도로를 부설해주었고 총길이 8,000메터, 너비 40―50센치메터, 높이 60―70센치메터의 세멘트 논도랑을 건설해주었으며 3천여메터 길이, 4메터 너비의 논판 세멘트도로도 깔아주었다. 서일광에 따르면 2년이 안되는 사이에 저그만치 1,000여만원의 국가 자금이 투입되였다. 하여 마을에 남은 촌민들은 살기가 더 좋아졌을뿐더러 농사짓기 또한 더 편리해졌다. 

서정복, 서일광 부자의 뒤에 유기벼를 심는 22헥타르 드넓은 논판이 보인다. 

홍수의 침습으로 인해 촌에 있던 20여가구의 주택이 전부 위험건물로 전락되자 국가에서는 촌민들에게 가구당 63평방메터 규모 표준으로 6.3만원씩 주택건설 보조금을 발급했다. 그중에서 6가구가 마을에 주택을 지은 외 나머지 촌민들은 장기간 외지나 외국에 나가있는 관계로 보조금만 수령하고 자택지를 전부 촌민위원회에 바쳤다. 촌에 다시 주택을 지을 생각을, 촌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이다. 

20살에 입당하고 28세에 촌서기 맡은 젊은 농군

서정복에 따르면 지난 세기 90년대 중·후반에 촌에는 최고로 2개 생산대에 58가구, 187명 촌민이 오순도순 살고있었는데 현재는 서정복 일가 4명을 포함해 도합 6가구에 13명 촌민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서일광의 어린시절 촌에는 같은 또래 친구가 7명이 있었는데 이젠 본인만 남게 되였다고 말했다. 13명의 촌민중에서 고중 3학년에 다니는 그의 동생과 서일광, 어머니를 빼고 전부 서정복이 회장을 맡고있는 촌로인협회 회원이다. 

서일광 서기가 창고에 쌓여있는 유기벼를 소개하고 있다.

2008년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고중을 졸업한 서일광은 여느 조선족 청년들과 다름 없이 북경, 청도, 소주, 대련, 연태 등 국내 대도시와 연해도시에서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에 취직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갔다. 2010년 “중국에서 살려면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공산당원이 되여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무살의 나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2014년 24살의 서일광은 귀향창업의 꿈을 안고 타지생활을 접고 대흥촌에 돌아왔다.

아버지의 논농사를 돕다가 2016년부터 촌의 감독위원회 주임을 맡았던 서일광은 2018년에 서란시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법인대표를 맡았다. 같은해 28살의 서일광은 촌당지부 서기와 촌민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자금유치하여 촌기업 건설하고 촌의 63헥타르 논 집중 경영할터 

현재 촌의 호적인구는 40가구, 140명이고 실제 거주 촌민은 6가구, 13명에 그친다. 외지와 외국에 나가있는 촌민들이 자택지를 포기하자 서일광은 자금을 유치하여 부지면적이 2만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유기비료공장을 원래의 촌 자택지 자리에 건설하고 있다. 현재 1기 공사에 50여만원이 투입되였다. 

자금을 유치하여 건설중에 있는 유기비료공장을 소개하는 서일광 서기와 서정복 회장 

이 공장이 정식으로 생산에 투입되면 본 촌 뿐만 아니라 주변 향진의 촌툰에도 팔리게 될 것 같다며 서일광은 판로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정복, 서일광의 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에는 400여평방메터의 비닐하우스가 5개 있는데 벼모 자람새가 좋다고 한다.  

서일광은 올해말까지 촌의 63헥타르 논에 대한 촌민들의 토지소유권, 사용권 및 기타 권리가 확정되면 원래 다른 촌에 임대주었던 대흥촌의 남은 논까지 촌에서 집중관리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때가 되면 부태가정농장유한회사에서 대흥촌의 63헥타르 논에 전부 유기벼를 재배하게 되는데 삯군을 최소 300명은 고용해야 될 것 같다고 서일광은 말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기자

编辑:유경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