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길림신문》 창간 40돐이 되는 해이다. 40년전인 1985년 4월 1일에 《길림신문》이 연길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창간일에 즈음하여 나는 《길림신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안고 창간호를 펼쳐보았다.
창간호 제1면의 판면 구성을 보니 1985년 3월 30일에 거행된 《길림신문》 창간기념대회의 성황을 담은 기사 <《길림신문》 창간기념대회 성대히 거행>이 판면 왼쪽에 톱으로 실렸고 <열렬한 축하 간절한 희망>과 <창간사>가 두번째와 세번째 기사로 판면 오른쪽 중·상반부에 실렸다. 기사들을 훑어보는 순간 나의 가슴은 몹시 설레였다.
특히 《길림신문》의 취지를 제시해준 <창간사>의 구절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창간사의 서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중공길림성위의 결정에 의하여 창간되는 《길림신문》이 오늘 태여났다. 이것은 우리 성 100여만명 조선족 인민들이 오래동안 갈망해오던 일로서 당의 민족정책의 구체적 구현이다. 이로부터 광범한 조선족 인민들의 정치문화생활에는 새로운 중요 내용이 보태졌다.”
그래서 톱기사 <《길림신문》 창간기념대회 성대히 거행>의 견제를 <우리 성 조선족 인민들의 정치생활에서의 대경사>로 단 것 같다. 잘 달았다. ‘오래동안 갈망해오던 일’로서 ‘대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창간사는 《길림신문》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길림신문》은 통속적이고 알기 쉬운 글과 특유의 풍격으로 광범한 조선족 인민들에게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선전하고 당의 강령, 로선, 방침, 정책, 사업임무와 사업방법을 선전하며 전 성 각지의 새로운 정황,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경험을 보도하고 여러 전선에서 나타난 영웅적 모범인물들을 선전한다. 여러 면에서 생활을 반영하고 정보를 알려주며 지식을 전파한다. 그리하여 조선족 인민들로 하여금 제때에 천하대사를 알도록 하고 당의 정책을 제대로 알도록 하며 기개를 떨쳐 앞으로 나아가며 근로치부하여 더욱 행복하게 살도록 한다.”
창간사는 신문사의 다짐도 부언했다.
“길림신문사의 전체 동지들은 당의 령도하에, 광범한 간부와 군중들의 대폭적인 지지하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신문을 생동하고 활발하며 첨예하고 신랄하며 독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꾸림으로써 신문으로 하여금 시대의 맥박이 고동치고 지혜와 힘이 넘쳐나게 할 것을 다진다. 동시에 공산주의정신으로 사람들의 지조를 키워주며 선전보도의 사상성, 전투성과 취미성을 높이고 지방색채와 민족특점이 짙은 신문을 출판하여 사회주의 물질문명 건설과 정신문명 건설에 기여하련다.”
40년래 길림신문사 사람들은 바로 창간사에서 제시한 《길림신문》의 취지와 요구에 따라 끈질기게 일해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따냈다.
성당위와 성정부의 크나큰 배려하에 빈주먹 밖에 없던 길림신문사는 장춘으로 성공적으로 이주하고 7층짜리 사무청사에 입주했으며 재정 차액보조체제로부터 재정 전액지불체제로의 순조로운 전환을 이룩했다.
정품전략을 실시해 보도 형식과 내용 면에서 부단히 혁신함으로써 백성들이 즐겨 보는, 력사에 기재할 만한 수많은 기획물들을 창출하고 보도 반경을 넓혀 국제전파에 모를 박아 ‘중국신문상’ 8편을 수상하는 기적을 창조함으로써 중국 조선문 신문이 응당 서야 할 위치를 정립시켜놓았다. 즉 《길림신문》을 세계가 중국 조선족을 료해하고 중국의 변화와 나라의 민족정책을 료해하는 한개 중요한 창구로, 중국 조선족의 주류가치관이 숨쉬는 집산지로 부상시켰다.
그러나 분투의 길엔 정지란 없는 법이다. 이미 취득한 성과는 다만 어제의 것일 뿐 오늘과는 무관하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부터 새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길림신문사 후배들이 창간사에서 밝힌 취지를 초심으로 삼고 신들메를 조여매고 새시대의 발자취에 맞춰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보다 풍성한 ‘열매’를 따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