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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유산순방]

전통이 미래로 이어지도록… 전통을 지키는 사람

— 조선족전통혼례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전승인 홍미숙, ‘교육자’로 전통 전승

하나의 조롱박이 똑같이 두개로 나눠지고 또 두개를 맞붙이면 다시 하나가 되듯 합근례는 이젠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일심동체한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홍미숙은 설명했다 .

시대별로 보는 전통혼례 장면, 시대의 발전과 함께 혼례 절차와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얼마나 기꺼운 일인가요.” 2023년 7월, 산동대학의 12명 학생이 전통혼례에 대해 알고 싶다며 련락을 해왔다. 홍원장은 기꺼이문화원으로 초청해 2시간 동안 공익 특강을 진행했다 .

일전 문화관광부는 제6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 명단(942명)을 확정했다. 길림성에서 도합 11명 장인(조선족 4명)이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 명단에 입선되였는데 그중 민속 분야에서 홍미숙(65세)장인이 조선족전통혼례로 이름을 올렸다.

하나의 풍속으로서 혼례는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인들의 시작을 축복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의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시대의 발전과 함께 혼례 절차와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또 넓은 의미의 혼례는 그 기본구조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홍미숙장인이 수십년간 지켜온 조선족전통혼례는 어떠한 주요 절차가 있고 그 차별화된 특색은 무엇일가?

지난 2일, 기자는 연변민족전통례절문화원을 찾아 한평생 한‘우물’을 파며 걸어온 홍미숙의 발자취를 따라 무형문화유산인 조선족전통혼례의 계승과 보호, 나아가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전통혼례에서의 가장 큰 차별점이요? 기러기같은 사랑을 상징하는 전안례, 조롱박에 술을 따르는 형식으로 표현한 합근례, 다시 한번 약속을 상기시키는 맞절 즉 교배례를 들 수 있어요.”

홍미숙은 전안례, 합근례, 교배례를 조선족전통혼례의 핵심이자 특색이라고 짚었다.

단어의 뜻을 알면 그 의미가 더 쉽게 와닿는다. 기러기는 평생 한번만 짝을 맺기 때문에 부부의 믿음과 신뢰를 상징하는데 기러기처럼 평생을 사랑하고 변심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게 전안례이다. 하나의 조롱박으로 만든 작은 바가지를 사용하여 도우미인 ‘대반’들을 통해 신랑과 신부가 잔을 주고받는 의식이 바로 합근례이다. 하나의 조롱박이 똑같이 두개로 나눠지고 또 두개를 맞붙이면 다시 하나가 되듯이 합근례는 ‘오늘부터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일심동체한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그리고 교배례는 맞절 의식인데 신랑과 신부가 앞으로 함께 잘살아보자는 약속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의식이다.

이렇듯 매 절차마다에 의미와 상징이 부여된다. 홍미숙은 예로부터 전해져온 의식은 그야말로 인민대중들의 실천 속 지혜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이 함축되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방대한 량의 자료를 수집하며 한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부지런한 발품의 결과물이다. 전통의식에 대한 료해를 깊이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쉴새없이 찾아보고 필기한 건 물론이고 각 년대별 혼례사진도 꾸준히 돌아다니며 소장했다.

“사진이나 자료가 있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갔죠. 사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을 통해 들은 뒤이야기들도 푸술했어요.” 책 속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진배없는 ‘민간사전’이였다.

한우물 인생을 살아온 홍원장의 인생궤적을 증명하듯 문화원 작업실 벽면에는 20세기 10년대, 30년대로부터 시작해 그제날 혼례사진들로 한가득이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또 그리 유별난 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도문시 백룡촌 백년부락에서 7남매중 막내로 태여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네 집에서 컸다는 홍미숙, 당시 촌의 지부서기를 지내던 오빠의 뒤를 많이 따라다니며 마을의 대소사에 심심찮게 참가하게 되였고 의식을 진행하는 사회자를 보면서 큰 인상을 받았다는 게 그 계기라면 계기가 되겠다. 어린 홍미숙의 마음에 사회자의 꿈을 심어줬으니 말이다.

그 꿈을 이루려는 희망의 끈을 놓은 적은 없지만 될 듯 말 듯 아쉽게 스치다가 32세 되던 해 다시 그 끈이 운명적으로 련결되였다. 그것도 시아버지의 회갑연에서.

“학창시절에 학교 행사를 사회했던 경험이 있겠다, 도문시가무단에서 1년 일했겠다, 유치원을 꾸려 원장직을 맡아 6년 동안 유치원 행사도 도맡아했겠다… 시아버지의 회갑연을 준비하면서 사회자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번쩍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라? 다른 사람을 청할 거면 내가 해볼가?’ 그래서 제가 나섰죠.”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였다며 그는 멋적게 웃었다. 그런데 웬걸, 그날 회갑연이 열렸던 호텔의 책임자가 홍미숙의 사회를 눈여겨봤을 뿐만 아니라 능력을 높이 사 호텔과의 사회자 협력을 요청해왔단다. 신고식을 제대로 치른 셈이다. 하면 또 최선을 다하는 성격답게 열심히 했더니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도문을 넘어 연길로 발을 넓히면서 본격적인 꿈의 서막을 열었다.

기회는 운명처럼 왔고 포기하지 않고 달렸더니 인생의 매 시기마다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열손가락으로도 부족할 지경으로 홍미숙의 재능을 알아봐준 은인같은 지인들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좋은 재능을 여기서 멈추지 말고 문화로 승화시키면 좋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조언으로 탄생된 게 지금의 연변민족전통례절문화원이다. 전신은 2003년 그 당시 각 분야, 각 현시에서 맹활약하던 사회자, 사진사, 촬영가 등을 포함한 유명 인사 60여명이 합심하여 꾸린 연변조선족자치주사회자협회이다. 200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였다. 단순히 행사 진행자가 아닌 전통문화 알림이로서의 첫발을 이때 뗐다고 홍원장은 회상했다.

지금의 홍미숙을 있게 했고 수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기반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에서는 제자 육성, 례의교육, 례식전 수업(례절교육)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사회단체든, 학교든, 정부행사든… 사회자 역할이든, 특강 역할이든, 교육자 역할이든… 불러주는 곳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조선족전통혼례는 2008년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였고 홍미숙은 올해 조선족전통혼례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전승인으로 확정되였다.

“대표성 전승인으로 인정되니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벅찬 희열과 보람을 동시에 느낍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혼례 문화를 지키고 널리 알리는 일을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국가급 대표성 전승인으로 이름을 올리니 그 무게감과 책임감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오죠.”

한평생을 무대 우에서 살아온 홍원장은 이젠 무대 뒤에서 후배들을 밀어주는 ‘교육자’로 신분을 전환했다. “무형문화유산은 한 사람의 힘으로 유지될 수 없어요.” 현재 8명의 제자가 혼례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홍원장은 전통혼례를 지켜나가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문화원의 문은 항상 열려있어요. 배우려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 가르칠 거예요.” 전통혼례는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라 중국조선족의 력사, 정서, 믿음이 담긴 문화의 결정체라는 걸 젊은이들에게 알려 이 의식의 의미를 리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설명을 이었다.

가장 큰 장벽은 시대의 변화이다. 현대인들은 전통혼례에 대한 료해가 적다. 그러다 보니 전통혼례가 복잡해 보여서 간단한 서양식 결혼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각적인 보급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언급했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건 요즘 일부 결혼식이 화려한 이벤트를 펼친다거나 무대를 꾸미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겁니다. 혼례 본연의 의미로 돌아가 전통 속에서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천편일률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문화와 특색을 살린 ‘전통결혼식’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그는 “조선족전통혼례 상차림을 준비할 때 상 1층에 당지산 제철과일을 놓고 상 2층에는 조선족의 가장 대표적 전통 음식인 색과자와 과줄을 올립니다. 그리고 제일 웃층에는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의 내장을 모두 준비함으로써 자식들의 번창을 기원하죠. 거기에 길상물인 수탉 2마리도 함께 놓습니다. 전통혼례에서 상차림은 사실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비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조선족전통혼례의 상차림은 그제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지혜와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을 축복의 상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렇다고 전통이 ‘과거’에만 머물러있게 하는 건 또 아니였다. 현대화의 물결 속 무형문화유산 전승인으로서 끈질긴 의지와 창의력으로 옛 문화를 오늘날에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은 물론, 진정한 전승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 살아숨쉬게 하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시대의 발전에 발맞춰 부단히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젊은 세대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접목하는 혁신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시대에 맞는 전통혼례를 부단히 세상에 내놓는 게 전통혼례를 보호하고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발전 방향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전통이 미래로 이어지도록… 전통을 지키는 사람 홍미숙전승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내 인생이 전부 여기에 기록되여있다.”며 펼쳐보인 두꺼운 노트에는 걸어온 지난 세월의 흔적 뒤로 전승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책임들이 빽빽이 적혀있었다.

/김가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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