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03版:사회 上一版 下一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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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만에 렬사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올해 75세인 리금순은 항미원조전쟁에서 희생된 리근오(李根伍) 렬사의 유복녀이다.

해방전 리금순의 가정은 왕청현 라자구진 사도하자촌에 거주했다. 어머니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살리려고 갖은 고생을 다했고 생활은 째지게 가난했다. 심지어 겨울이 되면 구들에 벼짚을 깔고 가마니를 덮고 자기도 했다. 게다가 라자구는 토비소굴이여서 토비들의 성화에 하루도 편할 새 없었다.

1948년 10월, 리근오는 간질병을 앓는 5살 아들과 임신 4개월 밖에 안되는 안해를 남겨두고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다.

해방전쟁을 거쳐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한 그는 1950년 2월에 경상북도 영우(永优) 전투에서 31세 나이로 전사했다. 

아버지가 참군한 이듬해인 1949년 5월에 태여난 리금순의 손에는 아버지 렬사증 한장뿐이다.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리금순은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리움과 서러움 속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렬사 후대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연길 ‘로전사의 집’ 봉사중심 당지부 서기이며 리사장인 서숙자는 지난 21일에 ‘로전사의 집’ 로인뢰봉반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금순의 가슴 아픈 사연을 헤아려 그의 집을 찾아가 정황을 료해하고 그를 이끌고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마침내 리근오렬사의 기본 정황이 적힌 종이장 한장을 찾아냈다. “길림성 왕청현 사람, 1919년 10월생···” 이어 충렬벽 왕청현 부분에 모셔진 렬사의 이름 세글자도 찾아냈다.

“아버지가 여기에 계셨군요!” 

기쁨과 서러움으로 통곡하는 리금순을 부둥켜안고 서숙자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렬사릉원 사업일군들도 또 한분의 렬사 유가족을 찾은 데 대해 긍지감을 느꼈다.

리금순은 이젠 제사터라도 있게 되였다며 무등 애를 써서 아버지를 찾아준 서숙자 서기에게 연신 감사를 드렸다.

/박철원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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