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진 해살이 언덕에서 뛰놀며
잠자는 어린 풀을 불러 깨운다
구름이 살며시
어깨 우에 내려앉아
남쪽 나라의 온기와
그 온기에 취해버린
내 님의 기별을 전해준다
바람이 새 노래 부르는 양지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지쳐버린 내 인생이
잔잔히 울리는 물소리 베고 누워
해바라기를 한다
겨울산
하얗게 눈 뜨고 잠자는 산
봇나무 황철나무
우거진 숲속에서
할배의 무훈담이 걸어나온다
그해 그 계곡 그 산정에서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지금 쯤
어느 녀인의 가슴에서
울고 있는지?
우줄우줄 일어서는 산이
자꾸만 오라고 나를 부르는데
제 이름도 번듯이 걸어놓을
한그루 나무조차 없는 나는
추운 노래를 마시며
콩크리트 바다 속에 몸을 숨긴다
길 우에서
길은 책이다
나는 날마다
길을 읽는다
지나간 세월이 모두
길 우에 모여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길 우에 계신다
길의 표정이 어두우면
나의 하루엔 비가 내리고
길의 얼굴이 밝아오면
나의 인생엔 꽃이 핀다
길은 책이다
나는 날마다
길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