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울안 바자굽에 모록하게
호함지게 자랐네요
팔처럼 뻗은 줄기마다 대롱대롱
숱한 보자기를 달았네요
그 보자기를
살짝 열었어요
노르스름 동그란 것 달려있으니
똑 마치 태동의 자궁 같아요
꼭지를 따고 구멍 내니
찔끔 ‘양수’가 쏟아지네요
씨앗을 꺼내 종자로 받아놓고
공기 주입하고 입안에 넣었어요
그다음 막달 아이 들으라고
열심히 불고 불었어요
무궁한 생명의 힘이
막 터지는 소리예요
꽈륵 ! 꽈르륵!…
나팔꽃 선녀들이
먹장구름 몰려오던 날
외로운 시골 사나이
집뜨락을 배회하다 보았습니다
전보대의 당김줄 타고
얽히고설킨 푸른 넝쿨들이
수많은 나팔꽃 달고서
칭칭 감돌며 기여오르고 있었습니다
나팔꽃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원추형으로 빙 두른
분홍빛 보라빛 치마폭이며
복판에 밋밋한 북채 모양의
하얀 노란 꽃술이며…
불현듯 사나이 눈앞에는
신비한 환상이 펼쳐집니다
하늘엔 비스듬히 바줄이 드리우고
화려한 치마저고리 입은 선녀들이
물구나무 자세로 긴 다리 뻗고
바줄 따라 사뿐사뿐 하늘 밟으며
뜨락으로 내려옵니다…
고독을 감내중인 사나이
얼었던 마음 스르르 풀립니다
이윽하여 마구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문득 불길한
비꼬치 바람 불어옙니다
오 천둥이여 제발 울지 말아다오
황홀한 세상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머물러 있게스리…
배나무
너의 옷은
무수한 잎새로 만들어졌다
가을이 오니
몸에 품은 귀중한 결실들을
세상에 주저없이 바치고
쑥스러운 듯
단풍든 옷을 망설이다가
한잎두잎 벗기 시작한다
겨울품에 안겨 혹독한 사랑 나누면
이제 또 둥근 희망을 몸에 배겠지
사랑에 급한 겨울은 멀리서 먼저
맵짠 추위를 날려보내며
배나무 탈의를 돕는다
그런데 배나무는 웬일인지
마지막으로 남겨둔 한잎을
바람에 펄럭이며
무언의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낸다…
드디여 눈보라를 일으키며
겨울랑군 성큼 다가올제
배나무는 그제야 하늘 우러러
그 한잎을 마저 떨어뜨려 벗는다
한점 부끄럼 없이
사랑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