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승호
ㅡ창산(苍山)의 정기를 받으러 가다
2023년 11월 5일, 나는 안해와 함께 운남성의 대리로 가는 려행길에 올랐다. 오후 1시 30분에 항주공항에서 리륙하여 대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 50분이 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서니 해가 아직 지지 않았고 하늘이 짙게 푸르러 쾌적한 날씨였다.
우리 부부가 숙박을 정한 곳은 우리 나라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바이족(白族)의 집중 거주지였는데 집 앞의 길고도 곧게 뻗은 골목길이 바로 유명한 차마고도(茶马古道)였다.
대리바이족자치주는 운남성 중부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총면적은 2만 9,459평방킬로메터인데 그중 산간면적이 93.4% 를 차지한다. 2022년말까지 전주의 총인구는 364만 5,000명인데 바이족인구는 34.3% 를 차지하며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바이족자치주이다. 대리는 북아열대고원의 계절풍 기후로서 년평균 기온은 약 15 ℃ 이고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으며 지형지모가 복잡하고 해발고도 차이가 현저하며 기후의 수직차이도 심하여 아침저녁으로 비교적 차갑고 낮에는 비교적 무더웠다.
확 트인 동쪽 앞으로 1킬로메터 되는 거리에는 얼하이(洱海)호수가 보이는데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수면우로 금빛 색갈이 반짝이고 있어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먼 곳의 산봉우리가 햇살 속에서 보일락말락 하는 정경은 또한 한 폭의 몽롱한 산수화를 방불케하였다.
서쪽으로 0.5킬로메터 떨어져있는 곳은 바로 신비로운 창산(苍山)인데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빛을 발사하자 산의 륜곽이 밝게 드러나더니 우뚝 솟은 산맥은 더욱 웅장하고 장관이였다.
대리 창산(大理苍山) 세계지질공원은 대리시 경내에 위치해있었는데 운령산맥(云岭山脉)남단의 주봉으로서 19개의 산봉우리로 구성되였으며 총면적이 약 500평방킬로메터이고 평균 해발은 3,500메터 이상이며 제일 높은 마룡봉(马龙峰)은 해발 4,122메터이다. 산세가 가파르고 기후의 수직 차이로 말마암아 한대, 온대,아열대의 다양한 동식물 자원을 잉태하고 있다.
창산은 경치가 청수하고 아름다우며 구름, 눈, 샘물, 돌로 유명하며 더우기는 무더운 여름철에도 눈이 녹지 않는 희귀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국내외에서도 소문난 명승지로 탈바꿈하였다. 또한 유명한 불교성지인 감통사(感通寺), 적조암(寂照庵), 만불사(万佛寺) 등 사찰들은 많은 유람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창산은 자연풍경, 인문경관과 종교문화가 집대성된 유명한 산악풍경구이다...
9시30분쯤 우리는 약간의 음료수들을 갖추어 가지고 공원 어구에서 출발하였다. 좁은 올리막 길은 전부 돌을 깔아놓은 계단이였고 올라오면서 촘촘히 늘어선 작은 시장을 거치는데 장사군들이 각종 특산물들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층계가 얼마나 가파로운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잠간씩 쉬였다가 올라가곤 하였다. 먼 거리는 아니건만 한참만에야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오른쪽은 산으로 올라가는 삭도 입구이고 왼쪽으로 뻗은 올리막 길은 우리가 구경하려는 감통사 방향이다.
감통사는 일찍 우리 나라 한조 때부터 있었는데 당조에 걸쳐서 수건되였고 시대의 변천을 걸쳐 정도부동하게 파손되였다. 지금의 절간은 실지로 청나라 초기에 창산 기슭에 재건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는 감통사 대문을 지나서 가파로운 올리막 길을 따라 5분간 힘겹게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절간은 그리 크지 않은 오래된 건축물이였는데 세월의 부대낌속에서 매 한개의 벽돌과 기와가 마치도 천년의 이야기를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절에서 나는 각 전당마다 돌아다니며 보았는데 비록 매 불상마다 공양하는 신조는 잘 모르지만 그 독특한 의미만은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절간의 울안에는 600여년 되는 차나무(茶树)가 있는데 여기에는 특산인 유명한 감통차도 있다. 명나라 시기의 유명한 려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이 감통차를 마셔보고 맛이 아주 좋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대면적의 차원으로 발전하여 출국하는 명차로 되였단다. 이 외에도 250년 되는 고목도 있고 벽면에는 문인들의 시들도 새겨져있었다.
감통사를 돌아보면서 나는 다소나마 불교 문화에 대한 인식을 더 한 차원으로 높이게 되였고 더 깊은 리해도 가지게 되었다.
감통사에서 한시간가량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은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도 여유가 있는지라 우리는 적조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적조암은 감통사 옆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착하는데 거리는 약 350메터이지만 얼마나 가파로운지 마치 절벽길로 오르는 것만 같아 정말로 힘든 걸음이였다.
절간 앞에 도착하니 주위에는 많은 고목들로 가려져 있었고 환경이 아주 조용하였다. 대문 량켠에는 돌사자가 의젓하고 점잖게 조용히 버티고 앉아 있었는데 마치 천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듯 하였다.
절간 안을 거닐다 보니 이곳 저곳 력사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었고 오래된 나무기둥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안이 조각되여 있어 매 글자마다 장인의 심혈이 응집되여 있는듯 싶었다.
나는 적조암 뒤산의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 정자가 있는 곳에서 다리 쉼을 하려고 돌걸상에 앉았다. 눈을 감고 대나무 숲의 바람 소리, 새 소리, 시내물의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대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고 생명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알것 같기도 했다.
창산은 구경 거리가 많았지만 하루 시간으로는 역부족이고 당일의 려행코스는 창산의 빙산일각에 불과하여 그야말로 '말 타고 꽃 구경'을 한 정도였지만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며 후에도 두고두고 이곳의 평온과 아름다움을 기억할 것이다.
(다음기 계속)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