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올해까지 김청수, 홍옥, 유경봉 등 3명의 《길림신문》 편집기자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 내가 쓴 글들이 볕을 보았는데 편집선생님들의 손을 거치면 엉망이 던 글도 멋진 작품으로 변신하군 했다. 《길림신문》 사 편집기자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마음을 따뜻히 덥혀주고 나에게 글쓸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었다. 이는 독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림신문》 사의 우량한 전통이며 풍격이지 않을가 싶다. 더보기……
2008년 8월 9일, 《길림신문》에 발표된 수필 <진달래와 렬사비>가 《길림신문》제3회 ‘비호컵’ 문학상 성인부문 금상을 받으면서 행운스럽게도 문학상 시상식 방문자로 외국나들이를 하게 되였다. 고무풍선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11명의 일행들과 함께 2009년 7월 23일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땅을 밟게 되였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더보기……
내 청춘의 잔상은 늘 1986년 초여름을 클로즈업해서 떠 올린다. 흰눈처럼 날리는 비술나무씨, 넘실대는 부르하통하 그리고 강가의 붉은 벽돌집, 그곳은 바로 지금의 연길백산호텔 곁자리, 금방 고고성을 올린 《길림신문》사 편집실로 맨 처음 발걸음을 디밀던때의 내 모습이다. 더보기……
《길림신문》은 이국땅에 흩어진 조선족들의 삶과 단절되였던 나에게 조선족사회를 찾아나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길림신문》은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변함없는 고향사랑을 따뜻이 보듬어 주었고, ‘특파원’이라는 이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고향에 수시로 편지를 보내며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더보기……
10월도 막 흘러갈 무렵부터 신문사는 약속이나 한듯이 사무실 내에서도,사무실끼리도 별스레 분주스럽다. 농사군의 일년지계는 흔히 봄에 있다 하지만 신문사의 새해농사 차비는 어김없이 늦은 가을부터 이른 겨울 사이에 낟가리가 대체로 가늠된다. 말하자면 주문부수가 느긋하게 장작처럼 푸짐히 쌓여야 새해 신문농사에서 신바람날수 있다. 더보기……
《길림신문》이 창간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에 나와 《길림신문》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더없이 영광스럽다. 이국 타향의 소식을 제때에 신속하게 발표해주기 위해 밤을 새울때가 많았던 여러 편집선생님들과, 나를 찾아 꺼내주신 홍길남 사장님께 진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바이다. 더보기……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길림신문»에서 조직한 학생들 글짓기응모에 우리 학생들 작문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길림신문»과 인연을 맺게 되였다. 나는 학생들의 작문을 섬세하게 수정하여 수십편을 추천하였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응모는 지도교원의 손길이 많이 가야 하기 때문이였다. 나는 학생들이 응모에서 영예를 안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반복적으로 수정하고 또 수정하여 추천하군 하였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