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도 칠십대 중반의 로년에 이르렀다. 비록 나이 탓에 많은 기억들은 희미해가지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노을이 진붉게 물들었던 저녁무렵에 파출소 민경이 여덟시간만에 잃어 버렸던 나의 아들을 안고 우리 집 대문안으로 들어서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그리고 그날의 주인공, 평생 잊지못할 어느 한 어르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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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나도 칠십대 중반의 로년에 이르렀다. 비록 나이 탓에 많은 기억들은 희미해가지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노을이 진붉게 물들었던 저녁무렵에 파출소 민경이 여덟시간만에 잃어 버렸던 나의 아들을 안고 우리 집 대문안으로 들어서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그리고 그날의 주인공, 평생 잊지못할 어느 한 어르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다. 더보기……
며칠 전, 연길에서 보낸 택배 한 상자가 도착했다. 친구가 보내준 조선족 전통음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전화할 적마다 나는 빠짐없이 친구에게 부러움을 표시하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길에서 조선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복받은 일이라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입맛 돋구는 음식들이 연길에 있는가? 친구는 그게 뭐 대수냐는 투로 심드렁하게 말한다. 더보기……
훈춘 시내 중심가,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거리는 조용하기만 한데 ‘본죽&비빔밥’ 가게 안은 벌써 분주하다. 젊은 사장 구명화(35세)가 오늘 쓸 재료를 손수 골라내고 남편 리광일(37세)이 칼질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 가게를 오픈한지는 벌써 13년째다. 더보기……
물 공급이 하루 끊긴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아마 수도관이 얼어 터진 모양이다.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생수를 주문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언제든 콸콸 쏟아지던 물이 갑자기 끊기니 막막했다. 우두커니 창가에 섰다. 그런데 아파트 창밖 도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옛날 기억이 슬슬 떠올랐다. 더보기……
세월이 쏜살처럼 지나간다더니 나도 어느덧 60세를 넘긴 로년기에 들어섰다. 생활형편이 펴이면서 나도 남들과 같이 각종 무료 운동시설을 다니며 신체단련을 한다. 몸을 단련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고 유쾌하다. 그런데 겨울철 스케이트를 탈 때면 지금도 알지 못할 '낯선 친척'에게서 얻었던 스케이트를 생각하며 그분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지금까지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더보기……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던 시절, 나도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이불짐을 둘러메고 찾아간 곳이 있었는데 고작 11세대가 사는 편벽한 중성골 마을이였다. 로약자와 환자가 많아 로동력이 모자라고 농사도 흉년이 들어 일년내내 땀흘려 가꾼 량식을 나누면 공량 낼 여유조차 없었다. 일년 농사가 한공에 고작12전이였으니 현금 분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더보기……
61년전 그때 그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뼈대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날의 나는 정말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잊지못할 뼈저린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가난이 무엇이고, 생존이 무엇이며, 은혜가 무엇인지 몸으로 배웠던 것 같다. 더보기……
정년퇴직 후, 나는 볼일이 있어 왕청에 갔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여 옛날 그 서점 자리를 찾아가 보았다. 그때 나는 그 서점에서 책 한 묶음을 사들고 나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서점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번화한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몇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응어리인 어린시절의 부끄러운 그 행동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참회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