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으로 처음 만난 그때, 우리 나이 겨우 열일곱, 열여덟 살이였지. 저마다 이불이며 옷가지를 큰 보자기에 싸서 서너 개씩 이고 지고 왔던 모습, 고향 선배나 친척들이 마중 나와 짐 풀어 주던 모습, 대학 생활(연변대학 조문계 82학번)을 시작한다는 설렘에 들떠 있던 모습, 이 모든 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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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생으로 처음 만난 그때, 우리 나이 겨우 열일곱, 열여덟 살이였지. 저마다 이불이며 옷가지를 큰 보자기에 싸서 서너 개씩 이고 지고 왔던 모습, 고향 선배나 친척들이 마중 나와 짐 풀어 주던 모습, 대학 생활(연변대학 조문계 82학번)을 시작한다는 설렘에 들떠 있던 모습, 이 모든 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더보기……
어느덧 나도 예순 살을 훌쩍 넘겼다. 허리띠 구멍은 하나씩 늘어만 가지만, 8년 전 그날의 기억만큼은 뼈아프게 또렷하다. 맹장염, 그 끔찍한 이름과 함께 찾아온 고통과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어난 작은 온기—그 모든 것은 이제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더보기……
나는 '기억과 망각'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남에게서 받은 도움은 반드시 기억하고 내가 베푼 것은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내 나이 올해 일흔셋, 나는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오늘 길에서 807번 공공뻐스를 보자, 10년 전 생면부지의 그 한족 처녀 덕분에 두 번째 생명을 찾았던 순간이 생생히 떠올랐다. 더보기……
내가 어려울 때 기대가 되였주었고,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해주었으며, 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손금보듯 알아주던 친구 철수, 그와 헤여진 지 어느덧 서른 해가 되여 간다. 그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잊지못할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더보기……
그때는 내가 교원사업을 시작 한 지 얼마 안되는 30대 초반의 시절이였다. 그 시절 반주임들은 청명절과 추석명절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렬사기념비를 찾았다. 경모의 마음으로 기념비를 위문하고, 소선대 입대식이나 초청보고가 있을 때면 그곳에서 모였다. 학생들은 흰 대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엄숙한 표정으로 대례를 올렸다. 혁명선렬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는 듯 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