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촉나라 선민들이 살던 도강언시는 리빙이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을 축조한 것으로 인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도강언시에는 수리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과 정원, 풍부한 문화재가 집중되여 있다. 도강언시는 산과 물 도시와 숲이 조화로운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문화의 도시이자 경치가 아름다운 관광 명승지이다.
성도 벌판의 서북쪽에 위치한 도강언시는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으로 인해 명명되였으며 천혜의 땅 사천의 원천이라 불린다.
도강언은 예로부터 사천분지에서 서북쪽으로 소수민족 지역, 청해와 감숙으로 통하는 요충지이자 상업무역의 중심지이며 군사요지로 력대로 도강언성의 서쪽에 관문을 설치하고 군사시설을 두었으며 ‘사천 서부의 요충지’라 불렸다.
리빙은 촉나라에 이른 후 현지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도강언 수리시설을 건설함으로써 해마다 어김없이 범람하던 홍수를 막고 촉의 땅을 살찌게 했으며 그로부터 사천은 명실공히 천혜의 땅으로 되였다.
600여년 전의 명나라와 그 뒤의 청나라 때 교통이 편리하고 경제가 번창한 도강언시는 린근의 도시들에 비해 큰 규모를 자랑하며 ‘미니 성도’라 불리기도 했다.
장강상류의 지천인 민강은 사천 북부의 고산지대에서 발원하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산사태가 나면서 세차게 흘러 내리는 강물이 좁은 강바닥을 넘어 홍수피해가 심각했다.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벌판에는 모래가 깔려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그와 반면 동쪽 기슭에 솟은 옥루산에 막혀 민강이 동쪽으로 흐르지 못해 성도벌판의 서쪽에는 수해가 나지만 동쪽은 오히려 가물어 땅이 척박하고 백성들이 고난에서 허덕였다.
진나라 황제의 명으로 촉군 태수로 온 리빙은 현지 상황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선인들의 치수(治水) 경험을 바탕으로 기원전 256년, 민강이 산을 나와 성도벌판으로 흘러 드는 곳에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을 건설했다.
도강언 수리시설의 건설로 인해 자연재해가 빈발하던 사천 서부의 성도벌판은 ‘가뭄과 수해가 사람을 따르고 흉작과 기근을 모르는 ’천부지국(天府之国)이 되여 진나라의 6국 통일과 천부지국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서 거대한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줄곧 그 기능을 발휘하여 수해방지와 관개를 이루어주는 도강언 수리시설은 중국과 세계 수리 력사에서 기적으로 인정되며 ‘살아 있는 수리박물관’, ‘수문화의 요람’이라 불린다.
리빙 부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천인들은 494년과~498년에 이왕묘를 세웠다. 이왕묘는 원래 치수 공덕을 쌓은 리빙 부자를 추앙한다는 의미로 ‘숭덕사’라 불렀다.
도강언시의 서남쪽에 리퇴라는 산이 있는데 리빙이 이 곳에 물을 끌어들이는 인수로 보병구를 내면서 외딴 산이 되였다. 삼면이 아찔한 절벽이고 산자락으로 세찬 물결이 흐르는 리퇴산은 린근의 산과 물, 성과 언제, 고적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중국의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리빙을 기리기 위해 1990년부터 도강언 방수절(放水节)을 회복했다. 청명이면 관개수로의 물길을 여는 방수절은 중국 수문화에서 가장 독특한 민속행사중 하나로, 중국 무형문화재에 등재되기도 했다.
도강언시에서 서남쪽으로 15키로메터거리에 위치한 청성산은 중국 도교의 발상지 중 하나로 도교 10대 동천중의 ‘제5동천’이며 ‘신선의 도회(都会)’라 불린다.
앞뒤 두 산으로 나뉜 청성산은 둘레가 60키로메터이며 산발의 모양이 성곽을 방불케 한다. 숲이 무성하고 사계절 록음이 짙은 청성산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수려한 경치의 청성산은 도교의 명산이자 은자들의 은둔지이기도 해서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와 송나라 때의 시인 륙유, 명나라 때의 시인 양성암, 근대의 화백 서비홍 등 력대로 많은 명인들이 청성산에 은둔했고 오늘날 청선산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마애석각이 풍부하고 전각이 웅장하며 정자가 아담하고 명인들의 서예작품도 아주 많다.
/국제방송-조선어
编辑: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