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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고령에도 식물 연구에 혼신 다하는 김수철교수

올해 99세인 연변대학 농학원 식물학 교수인 김수철(당원)은 현재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의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터전에 유기농 채소들을 직접 재배하고 식물 연구와 《길림성식물지》 편찬(한어문 총 6권, 1, 2권은 이미 출판)에 바삐 보내고 있다. 

1925년 4월1일(음력)에 출생한 김수철교수는 현재 허리도 굽고 청력도 무디여 낮은 소리는 듣기 어려워하지만 시력만은 20대  젊은이들도 혀를 찰 만큼 좋아 안경이 없이 살고 있으며 컴퓨터도 세대나 바꾸었다. 두뇌는 젊은이들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명석하고 기억력도 좋아 식물지의 편찬에서 사진이 없는 식물들은 두뇌에 저장된 기억력을 더듬어 직접 그림을 그리는데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 보는 사람들마다 찬탄하고 있다.

비록 치아가 몇대 빠져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식사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얼굴색은 불그스레하고 살결이 부드럽고 윤기가 나며 검버섯과 주름살이 없어 아직도 50대와 같은 젊은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말을 시작하면 청산류수이다. 소탈하고 푸접이 좋아 웃음 띤 얼굴로 진지하게 조용한 분위기로 이야기꽃을 피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20대 중반에 연변대학 농학원에서 식물 연구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장장 75년을 일편단심 식물학 연구에 몰두했다. 김수철교수는 식물학 연구를 위해 연변의 장백산 일대와 동북3성 그리고 내몽골, 안휘, 산동, 운남, 해남 등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녔고 하루에도 100여리 험산준령을 오르내리며 촬영과 채집에 땀을 흘렸다. 그러다가도 인적이 드문 심산 속에서는 나무가지들을 후려서 간단한 천막을 만들고 그 속에서 휴대한 편의음식에 샘물을 마시며 밤을 지새기도 했다. 뭇별이 반짝이는 천막 속에서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동무하고 대자연의 정기를 받으면서 앞날을 꿈꾸었다고 한다. 

식물채집은 두 다리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채집하여 조심스럽게 메고 다니는 중로동이다. 길이 아닌 길을 톺으며 진땀을 흘리다가도 희귀한 식물종을 발견할 때면 눈물나게 기뻤다고 김수철교수는 지금도 가끔씩 그 나날들을 회억하며 행복에 잠기군 한다. 그렇게 수십년을 전국 각지에 발자취를 남기고 풍찬로숙하며 고생한 끝에 김수철교수는 야생식물에 관한 표본 2만 5,000여종이나 채집하여 국가에 막강한 자연자원 명세표를 제공했다.

 

조선어, 한어, 일어, 영어, 로어(영어와 로어는 자습으로 익힘) 등 언어문자를 장악한 김수철교수는 《장백산식물》, 《연변식물》, 《경제식물》, 《연변식물도색지(총3권)》, 《길림성식물지(총6권)》 등 28종의 저서와 론문들을 한어, 영어, 일어, 로어로 출판하여 세계 식물권위인사들의 긍정과 찬양을 받았다.

국내외의 식물학자들과 공동으로 써낸 식물 관련 책자와 론문들도 많다. 퇴직전에는 ‘모범공산당원’, ‘길림성로력모범’의 영예도 받았다. 

김수철교수의 식물 인연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였다.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5, 6세 때부터 김수철교수는 둘째할머니의 손을 잡고 동네돌이를 하곤 하였는데 길거리의 풀을 보면 무슨 궁금증이 동했던지 이것저것 손가락질하거나 아니면 직접 풀잎을 뜯어 할머니에게 보이며 식물의 이름을 묻기 좋아했다. 년세가 많으셨던 둘째할머니는 마을 주위의 풀들에 대해 기본상 알고 있어 묻는 족족 망설임이 없이 알려주었다. 그렇게 배운 덕이였는지 아니면 특별한 식물 신동이였는지 12세가 되던 해에는 소학교 전 학급 학생들 중에서 식물명을 제일 많이 알고 있어 동학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이런 어린시절의 식물 사랑이 한평생 식물 교수의 길을 걷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였다.

김수철교수는 연변대학 농학원에 출근한 약 40년간 도시생활 10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학원 부근의 농촌에서 살았다. 퇴직후에는 식물학 연구를 위해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의 시골 낡은 집을 구매하고 수건하여 살면서 일상적으로 사진기를 메고 산에 올라 식물과 버섯을 촬영하면서 식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터전도 꽤나 넓어 봄이면 자식들을 불러다 솔선수범하여 농사를 짓는데 올해도 례외없이 이미 남새 등의 봄파종을 끝내가고 있다. 

마음씨 고운 김수철교수는 항상 소박하고 겸손하며 욕심을 버리고 영예와 명예는 항상 남에게 양보하여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애대를 받고 있다. 국내외에서 장백산 식물로 두 사람 이상 합작하여 편찬한 서적과 론문은 언제나 편집인 명단 순위에 자기 이름을 뒤에 놓게 하는 겸손과 미덕을 보였다.

지금 김수철교수는 년세가 이미 100세 고령이 되여가지만 쉬려 하지 않고 계속 산에 올라 계절에 따른 시절 식물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각종 버섯들을 사진 찍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생각 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2023년 9월 중순의 어느 날, 김수철교수는 버섯을 촬영하려고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이틀 밤이나 모아산 북쪽 산비탈에서 밤을 지샜다. 당시 기온은 령상 10도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저온이 김교수의 생명안전을 위협했다. 새벽에 내린 이슬로 옷은 축축하게 젖어들었고 제때에 식사를 하지 못해 허기가 심했다. 김수철교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에 있는 쑥들을 꺾어 몸 주위에 둘러 보온을 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풋옥수수를 따서 생식하며 용케 허기를 달랬다. 

생사가 걸린 극한 환경 속에서도 촬영한 자료가 잘못될가바 가방에 사진기를 잘 넣어 나무 곁에 숨겨놓았는데 결국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김수철교수는 사진기보다 애써 촬영한 귀중한 사진자료를 잃어버린 일에 더 가슴 아파하고 있다. 이후, 김수철교수는 또 새 사진기를 구입해 계속 산에 오르고 있다. 

이런 김수철교수를 자식들은 서로 모셔가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은 너희들 신세를 보지 않겠다.”고 고집하며 계획한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가고 있다. 40여평방메터의 집안 벽쪽에 있는 이불 몇채, 컴퓨터와 복사기, 채색텔레비죤, 그리고 책장을 가득 메운 각종 서적들과 자료들이 김수철교수의 전부 재산이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아침에 뜨는 해를 반기고 저녁에 지는 해를 손짓하며 새들의 노래소리와 들꿩의 울음소리를 감상하면서 세기의 년륜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김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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