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기 부주석과 《중국민족》조문편집실 전임 주필 박복선의 기념사진
얼마전 위챗을 통해 전임 전국정협 조남기 부주석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비록 지인을 통해 조남기 부주석님이 이젠 공식석상에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갑자기 돌아간 것 같은 아쉬움과 허망함이 못 견디게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 민족의 걸출하고 위대한 위인이 서거했다는 데 대한 비통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사실 조남기 부주석님과의 첫인상은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 쯤으로 생각된다. 연변에서 자치주 당위서기 사업을 할 때 쯤으로 생각되는데 어느 한번 연길에서 조남기 서기의 연설을 감명깊게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조남기 서기는 요점을 기록한듯한 작은 메모지 한장만을 들고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중요한 연설을 하셨는데 나는 놀라움과 함께 대단한 지도일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남기 서기는 사업에서 항상 실사구시적이였으며 군중을 근본으로 하는 사업을 가장 첫자리에 놓았다. 어느 한번 연변에서 있은 한 행사 도중 비가 내렸는데 조남기 서기가 비를 맞으면서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때 나는 조남기 서기가 조금도 특수화를 부리지 않고 언제나 우리 군중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따뜻한 난류와 함께 진한 감동을 받았다.
사실 조남기동지는 연변과 길림성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줄곧 높은 직위에서 사업하셨지만 특수화를 부리지 않고 언제나 인민군중과 함께 고락을 나눈 훌륭한 지도자였다. 조남기 부주석은 언제나 인자하고 선량하면서도 지도일군의 틀거지가 없어서 만나는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었다.
북경에서 있은 많은 조선족 모임에서 보아도 조남기 부주석은 항상 로동지들을 존중하고 공경하였으며 수하사람들을 아끼고 격려해주었다. 덕망이 높은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사업차 조남기 부주석의 저택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국가급 큰 지도자의 호화로운 저택이라는 느낌보다는 근검하고 소박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가 사업했던 《민족단결》잡지는 지난 1989년도에 창간되였는데 조남기 부주석께서는 잡지 창간 10돐을 맞으면서 흔쾌히 제사까지 써주시였으며 금후 《민족단결》잡지를 더 잘 꾸리여 민족문화 발전에 적극 기여하라고 격려해주시였다.
어느 한번은 연길에서 동북군정대학 교우회가 소집되였는데 그 때 마침 룡정에 오신 조남기 부주석을 교우회에 모시는 일을 내가 맡게 되였다. 긴가민가하면서 달려간 일개 평범한 기자일 뿐인 나에게 조남기 부주석께서는 흔쾌히 참가를 수락하시여 나는 또 한번 몹시 감동되였던 적이 있다.
1989년도에 조선문 《민족단결》잡지가 창간되여서부터 2004년 퇴직하기까지 나는 항상 기자신분으로 북경에서 조남기 부주석 관련 행사들이 있기만 하면 거의다 참가했다. 물론 조남기 부주석님도 북경의 조선족 행사들에 많이 참가하시고 빛내주시였다. 행사들을 취재하면서 많은 사진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조남기 부주석님의 진귀한 력사적 사진들도 적잖게 들어있어 자부심을 느낀다.
조남기 부주석님의 생전에는 찍은 사진들을 현상해드리기라도 하면 매우 기뻐하셨지만 이제는 더는 조남기 부주석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는 결코 나 한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걸출한 지도일군인 조남기 부주석님을 보내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똑같은 아픔이고 슬픔일 것이다.
조남기 서기는 일찍 실사구시적이고 창의적인 사업원칙과 군중을 근본으로, 사업을 가장 첫자리에 놓는 것을 평생의 추구로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과 계시를 주고 있다.
/길림신문 북경특파 취재팀 안상근 김성걸기자
编辑: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