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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길림신문》이 걸어온 휘황한 40년

최화      발표시간: 2025-03-31 21:57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1985년 4월 1일, 《길림신문》 창간호 정식 출간.

●1987년 3월 5일, 길림성당위 판공청의 비준을 거쳐 길림신문사가 연변일보사로부터 분리되여 독립적인 편집위원회 설립, 리송영이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담임.

●1988년, 길림신문사가 신축 연변신문청사에 입주.

●1989년 9월, 신문인쇄공예가 연판인쇄에서 옵세트인쇄(胶印)로 전환.

●1990년 3월 20일, 연변주당위에서 리금남을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으로 임명.

● 1993년, 신문사 출판 업무가 장춘으로 이전, 연길에서 편집하고 장춘에서 출판 발행하는 국면 형성, 신문사 장춘 입주 기틀 마련.

●1995년 4월, 길림신문사 정식으로 장춘에 입주, 연길시에 분사 설치.

●1996-1997년,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사건’ 관련 보도를 통해 중한 량국 정부,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오해와 모순을 해소하고 리해를 증진하는 데 일조.

● 1999년 2월, 차룡수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담임.

● 1999년, 길림성정부의 재정 지지로 장춘에서 2,000평방메터에 달하는 7층짜리 사무청사 건설 및 입주.

● 1999년 7월 19일, 《길림신문》 부간 《동북저널》 창설.

● 2000년 1월 1일, 《인터넷 길림신문》 개통.

● 2001년 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필정(毕政)이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담임, 2002년 2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양동위(杨东伟)가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담임, 2003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최충문(崔忠文)이 길림신문사 부사장(전면사업 주관) 담임.

● 2004년 1월부터 신문의 4색인쇄 실현.

● 2005년 4월, 길림일보신문그룹 남영전을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으로 임명.

2005년 5월부터 신문판면을 원래의 4절지 4개 면으로부터 8개 면으로 확대.

2005년 6월, ‘장춘공항 벌금사건’ 관련 련속보도를 통해 귀국로무인원들의 권익을 수호하고 장춘의 출입경 환경을 정화.

● 2005년 9월 1일, 중국길림넷 조선문 채널(《인터넷 길림신문》) 정식 개통.

● 2005년 11월 17일, 당시 길림성당위 부서기 전철수가 성당위 선전부 부장, 길림일보사 사장, 총편집의 안내하에 길림신문사를 시찰.

● 2005년 12월 20일, 《길림신문》 창간 20돐 기념 좌담모임이 장춘 송원호텔에서 거행. 당시 성당위 부서기 전철수 참석.

● 2006년 1월, 길림신문사 재정차액보조체제가 전액지불체제로 전이.

● 2006년 1월부터 선후로 ‘창업취업’, ‘인성교육’, ‘연변 25시’, ‘송화강’, ‘산동의 아침’ 등 특집판면 개설.

● 2006년 12월, 《길림신문》발전연구회 발족, 신봉철 회장 담임.

2008년 10월 24일, 부간 《한국어마을》 창간.

● 2010년 3월 30일, 길림일보신문그룹 홍길남을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으로 임명.

● 2010년 9월, ‘온라인-오프라인 통합(网报融合)’ 개혁 사유 제기,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성공적으로 온오통합 실현.

● 2010년 10월 28일, 《길림신문》 창간 25주년 기념좌담회 소집, 《인터넷 길림신문》을 토대로 한 중국길림넷 조선문판 정식 개통.

● 2010년, 김룡기자가 남아프리카월드컵 취재 자격 획득, 국내 유일의 소수민족매체 기자로 월드컵 취재.

● 2010년, 저서 《60주년에 만난 60인》 북경민족출판사에서 출판, 북경서 출판식 거행. 기업가 후원으로 전국 320개 조선족중소학교에 책 보내기 활동 조직,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지도자는 이를 ‘하나의 문화공정’이라고 높이 평가.

● 2010년 상반년, 모바일신문(手机报)창설.

● 2011년 7월, 한국 서울에서 저서 《꿈을 이룬 사람들》 출판식 거행.

●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형계렬보도 ‘좋은 선생님을 찾습니다’를 기획, 3년 사이에 전국 81명에 달하는 조선족 우수교원들을 취재, 보도.

●2012년 3월 20일, 국가신문출판총서와 한국문화관광부의 허가를 거쳐 한국 서울에서 길림신문사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길림신문·해외판》을 정식 출판, 발행.  

● 2013년-2015년, 대형계렬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기획 및 조직.

● 2013년,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와 손잡고 ‘감동중국 조선족 걸출인물’(20명) 평의 및 보도 활동 기획. 

● 2013년 12월 20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걸출인물 대형문예시상야회 거행.

● 2013년, 위챗공중플래트홈 ‘조문투데이’ 개설.

● 2013년 3월, ‘두만강’ 문학면 창설. 동시에 통화청산그룹의 후원으로 ‘두만강문학상’을 설치하고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길림신문》 ‘두만강문학상’ 시상식 도합 5회 거행. 연후 연변인민출판사를 통해 정품선 《감로수는 흐른다》 출판.

● 2013년 5월, 장춘에서 ‘2012년 전국소수민족지역 신문상 평의활동’ 주관, 전국 각지 소수민족지역에서 온 23개 매체 참가.

● 2014년 년초, 《길림신문》 축구채널 개통.

● 2014년 5월─2014년 8월, 대형계렬보도 ‘산재지역 조선족학교로 가보다’(35편) 조직.

● 2014년 《중국기자》잡지 제12월호 본사 중국신문상 수상 경험을 중점 소개한 론문 발표.

● 2015년 1월, ‘온오통합으로 대외선전 전폭 강화’에서 이룬 성과로 2014년 길림성사상선전문화사업 혁신상 획득.

● 2015년 3월, 대형계렬보도 ‘백성이야기’ 시작, 지금까지 161편 발표.

● 2015년 10월 13일,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을 말하다’ 취재 개시.

● 2015년 8월부터 ‘연변축구 50년 최우수인물평의’ 및 표창대회 개최, 축구인물 계렬보도 조직해 센세이숀 일으킴.

● 2015년 12월, 《길림신문》 창간 30돐을 기념하여 길림신문사 사람들(근무했던 분들과 재직일군들)의 토막이야기들을 엮은 저서 《길림신문사 사람들》(50만자)을 연변인민출판사를 통해 출판.

● 2019년 3월 20일, 중국길림넷 조선문판이 조문넷(朝闻网)으로 독립.

● 2019년 3월 28일부터 대형구술시리즈 ‘문화를 말하다(口述中国朝鲜族文化)’(도합 127편)를 기획, 제작. 대형구술시리즈 《문화를 말하다》(도합 3권, 80만자)는 2023년에 연변인민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출판.

● 2019년 12월 8일, 국제전파에서의 소수민족언어매체의 역할 및 《길림신문》 중국신문상 수상작품집 출판좌담회가 장춘에서 소집.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 언론 분야 전문가들은 길림신문사의 중국신문상 수상에 대해 ‘길림신문현상’이라고 높이 평가.

● 2021년 년초, ‘길림N(感知吉林)’ 채널 개통해 길림성의 경제무역, 관광자원, 문화예술, 민속, 미식 등 정보를 전면적으로 소개.

● 2021년부터 2022년 사이에 <김봉호 인터넷 음악회>(3부작)를 제작 및 발표함으로써 인터넷 음악회라는 미지의 령역 돌파.

● 2021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조선족 가정 구성원들의 행복이야기를 담은 기획계렬보도 ‘나의 조국 나의 집’을 펴내 애국주의를 고양. 

● 2022년 중한 수교 30주년에 즈음하여 ‘재중 한국인의 행복스토리’ 기획, 전국에서 20명의 대표적인 한국인을 선정, 영상, 문자, 사진 결합 형식으로 보도 완성. 

●2023년 길림신문이 운영하는 SNS 계정이 길림성 5개 대표적인 SNS 계정에 선정.

● 2024년 3월, 《인터넷 길림신문》이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정식 운행 시작, 전자신문 발행. 

● 2024년 5월, 《길림일보》 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 방문, 해외 플래트홈의 우세로 《길림일보》와 한국 《경인일보》 MOU체결에 가교 역할.

● 2024년 5월, SNS 계정이 중앙선전부로부터 국제전파 우수사례에 입선.

● 2024년 5월, 신문사에서 제작한 영상 <‘라오취안’의 중국에 대한 정감>이 ‘중국 이야기 잘 전하기’ 창의적 전파 국제대회에서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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