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5세인 리금순은 항미원조전쟁 리근오(李根伍) 렬사의 유복녀이다.
리금순네 가정은 해방전에 왕청현 라자구 사도하자에서 살았는데 엄마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살리려고 갖은 고생을 다했으며 생활은 째지게 가난하여 겨울이면 구들에 벼짚을 펴고 가마니를 덮고 자기도 했다. 게다가 라자구는 토비소굴이여서 토비들의 성화에 하루도 편할 새 없었다.
1948년 10월 리근오는 간질병을 앓는 5살 아들과 임신 4개월밖에 안된 안해를 두고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다.
해방전쟁을 거쳐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는데 1950년 2월 경상북도 영우(永优) 전투에서 31세로 전사하였다.
아버지가 입대한 이듬해인 1949년 5월에 태여난 금순의 손에는 단지 70여년 세월 아버지의 렬사증 한장뿐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금껏 그리움과 서러움속에서 살아왔다.
렬사 후대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연길 <로전사의 집>봉사중심 당지부 서기이며 리사장인 서숙자는 지난 21일 함께 로인뢰봉반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금순의 가슴 아픈 사연을 헤아려 그의 집을 찾아가 정황을 료해하고 그를 이끌고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았다.
혹시 그곳에 리근오렬사의 실정이 있을런지 하면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았다. 마침내 리근오렬사의 기본 정황이 적힌 종이장 한장을 찾아냈다. ‘길림성 왕청현 사람, 1919년 10월생.... ..’ 이어 충렬벽 왕청현 부분에 모셔진 렬사의 이름 세글자도 찾아내였다.
‘아버지가 여기에 계셨군요!’
기쁨과 서러움으로 통곡하는 리금순을 부등켜안고 서숙자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렬사릉원 사업일군들도 또 한분의 렬사유가족을 찾게 된데 대해 긍지감을 느꼈다.
리금순은 이젠 제사터라도 있게 되였다며 무등 애를 써서 아버지를 찾아준 서숙자 서기에게 련신 감사를 드렸다.
/길림신문 박철원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