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술문화박물관에 들어서면 마치 술향기가 가득한 세상에 들어선 것 같다. 이곳에는 세계 각지의 명주들이 소장되여 있는데 그 중에는 모태(茅台)주와 같은 중국 술의 보물도 있다. 이 박물관의 창립자는 바로 백산방대그룹의 리사장 겸 당위 서기인 녕봉련(宁凤莲)이다.
중임을 짊어지고 모태주와 인연을 맺다
녕봉련과 모태의 이야기는 199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산시당주점(糖酒站, 지금의 백산방대그룹)은 경영난에 빠져 년간 적자액이 천만원을 넘었다. 1990년, 혼강시(浑江市)련합경영회사에서 근무중이던 녕봉련은 당주점 총경리로 임명되였다. 그해 35세의 젊은 녕봉련은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의 현황에 직면하여 결연히 중임을 떠맡았다.
“어렸을 때부터 중국 술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주류 사업에 종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라고 녕봉련은 회상했다. 그는 기업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뜨거운 야망을 품은 녕봉련은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한 려정에 나섰는바 국내 22개 현과 시를 돌아다니며 34개의 주류 류통업체 동료와 선배들을 방문했다.
90년대, 백산시당주점의 작업 장면
녕봉련은 깊이있고 세밀한 시장 조사연구를 거쳐 모태주 등 명주를 기업의 주요 경영제품으로 삼고 기업을 위해 ‘명품 발전전략을 실시하고 전국의 명주들을 류통하여 기업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한다’는 발전방향을 확립했다. 그는 앞장서서 종업원들을 이끌고 자금을 모으고 물량을 넓히며 시장을 개척했다. 마침내 치렬한 시장경쟁 속에서 당주점은 모태주 등 명주업체들과 합작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고 매출액도 계속 상승했다.
신용으로 모태 브랜드를 지키다
실적이 안정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녕봉련은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경쟁이 치렬한 시장에서 우세를 유지하려면 써비스 품질을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모태주를 류통하는 과정에서 녕봉련은 항상 성실하게 경영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녕봉련은 “신용은 백산방대그룹의 생명인바 신용 덕분에 백산방대그룹은 독특한 민영기업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룹은 판매되는 모태주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구매경로에 대한 관리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운송중 전 과정에 걸쳐 감독함으로써 중도에 물건을 바꿔치기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확보하고 있다. 또한 백산방대그룹은 구매품에 대해 엄격한 확인 및 검수, 입고등록을 실행하고 있으며 완벽한 위조방지 추적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여 모든 술이 출처, 생산과정, 품질검사 등 단계를 추적할 수 있는 상세한 기록과 정보가 있음을 보장하고 있다.
2020년, 녕봉련은 전국 10대‘성실스타(诚信之星)’로 선정되였다.
마음으로 모태주 이야기를 전파하다
주류문화의 오랜 연구자이자 전파자인 녕봉련은 1974년부터 다양한 술과 그 뒤에 숨겨진 풍부한 이야기들을 수집해왔다. 중국 술문화를 보다 직관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파하기 위해 녕봉련은 전국 최초의 민영 술문화박물관인 길림성술문화박물관을 설립했다. 이 박물관은 면적이 3,000평방메터에 달하는바 세계 각지의 근 6,000여종의 술을 소장하고 있으며 2012년 8월에 순조롭게 완공 되여 대중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였다.
박물관에는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년도의 모태주가 전시되여 있는데 이 수집품들은 녕봉련이 다년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집한 것으로 거의 모든 년도의 모태주 제품을 포함하고 있다. 이중에는 일반모태주 뿐만 아니라 희귀판이나 기념이 되는 여러 특별판도 포함되여 있다.
길림성술문화박물관의 모태주 전시구역
그는 모태주가 세계1위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뛰여난 품질 뿐만 아니라 깊은 문화적 배경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모태주 문화의 전파를 기업의 중요한 사명으로 삼았다. 박물관 전시구역에서는 해설원들이 생동감 있게 모태주의 유구한 력사와 정교한 양조기술, 섬세한 감별방법 및 풍부한 문화내포 등을 자세히 소개해준다.
이곳의 모든 술은 마치 살아있는 력사처럼 우리를 과거에로 안내한다. “이 모태주는 1915년 쌘프란시스코 빠나마세계박람회에서 중국 술이 유명해지는 중요한 순간을 목격했고 중국을 위해 영예를 따냈다. 력사와 문화적 의의가 깊기 때문에 설령 누가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려고 해도 나는 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중화민족의 자랑이고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제1세대 귀주모태주(80)이다. 장시간의 저장을 거쳐 독특한 맛과 비교적 높은 소장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시구역은 모태주 브랜드의 력사를 보여줄 뿐더러 중국의 오랜 양조력사의 생생한 축소판이자 상징적인 존재이다. 또한, 길림성술문화박물관은 모태주와 관련된 많은 력사적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보이는 이 자료와 물건들은 녕봉련의 세심한 보존과 분류하에 시간이 지나면서 귀중한 력사적 유물로 되여 시대의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길림성술문화박물관내 부동한 년도의 모태주
2013년 그는 67개 종류, 5,759개 품종의 술을 저장해 기네스 세계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길림성술문화박물관이 국가 4A급 관광지로 승격되여 문화관광의 새로운 명물이 되였으며 이런 그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길림성술문화박물관은 30만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였다.
성심성의껏 사회에 보답하다
‘경영에 전념하여 효익을 우선으로 하며 사회에 보답한다’는 것이 백산방대그룹의 발전취지이다. 사업이 나날이 번창함과는 더불어 녕봉련은 시종 사회에 보답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수많은 공익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실제행동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복리원은 그가 오래동안 방문하고 위문해왔던 곳이다. 햄마다 음력설이나 단오, 추석 등 중국 전통 명절이나 로인절이나 아동절이 다가오면 그는 그룹의 종업원들과 함께 로인과 아이들을 찾아 축복과 기쁨을 전한다.
녕봉련이 백산시아동복리원의 아이들을 방문하고 있다.
향촌진흥의 길에서 녕봉련은 초심을 잊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향촌 소학교를 지원하고 백산시 혼강구태안향소학교에 현대식 교육도구를 전달하는 등 학생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이어왔다. 백산시 륙도강진 서촌 촌민들을 위해 가로등을 설치했고 연안촌 촌민들을 위해 쓰레기차를 구입해주었으며 쓰레기처리장을 건설해 그들의 생활환경을 뚜렷이 개선시켰다.
녕봉련은 민족단결진보사업에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부 월급과 수당을 기부하여 백산방대그룹 민족단결진보교육장학기금을 설립하였고 백산시조선족학교와 장기적인 협조기제를 구축하였으며 백산시조선족로인협회에 공연복과 소품, 문예기자재를 기증했다. 녕봉련과 백산방대그룹의 이러한 노력은 사회의 광범한 찬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족단결진보의 모범으로 되였다.
백산방대그룹이 백산시조선족학교에 사랑의 기부를 하고 있다.
군인 출신인 녕봉련은 35년간 백산방대그룹을 인솔하여 ‘군대를 위문하고 조국에 감사하자’는 애국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오면서 나라를 수호하고 국방에 헌신하는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또한 강인함, 정직함, 고상함이라는 군인정신으로 그룹의 모든 종업원을 고무하고 격려한다.
녕봉련의 조직 하에 지난 10년 동안 백산방대그룹은 20여차례의 대규모 기부 활동을 진행하여 200여만원의 기부금과 물품을 제공했다. 기업의 35년간의 지속적인 발전은 300여명의 퇴직종업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사회 안정을 수호하고 사회 조화를 촉진하는 등 면에서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
녕봉련이 다년간 수여받은 부분적 영예들
녕봉련은 “시대가 나를 만들었고 모태주가 나를 이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단순히 술만 파는 ‘중간상인’이 되여서는 안되며 력사를 돌아보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아야만 더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며 “이는 일종의 책임이자 사명이다.”라고 강조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기자
编辑:유경봉